[책의 향기]사물에 깃든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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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사물/조경란 지음/304쪽·마음산책·1만3500원

토마토 캔을 열기 위해 온 집안을 뒤져 깡통따개를 찾던 저자는 소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을 떠올린다. “일상에서 도망치듯 산 속 암자로 떠난” 주인공이 꽃 따위를 꽂아 두기 위해 버려진 깡통의 입구를 자르려는데 마침 깡통따개가 없었단 이야기다. 그 소설은 아래와 같은 말로 시작한다. 글쓰기뿐 아니라 소소한 주변 사물, 그리고 이 산문집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이다.

“소설 쓰기란 결국, 하찮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진지한 것을 하찮게 생각하기 둘 중 하나다.”

7년 전 ‘백화점’을 소재로 장소와 물건, 사람, 역사, 자본주의 소비문화, 그에 대한 경험과 성찰을 다룬 에세이를 발표해 호평을 받은 저자가 이번엔 일상의 사물들을 탐구했다. 지난해 8월까지 1년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글들을 다듬고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해 단행본으로 묶었다.

누구나 사물에 얽힌 추억이나 기억, 지식, 정보, 생각이 있다. 저자는 책과 신문 등 모든 사물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며 그저 그 자리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영감, 창조성 등은 사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에서부터 자기 자신과 상호관계를 맺으며 출발한단 사실을 다시 새기게 만드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다 보면 저자의 지긋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여행지에서 방문한 카페, 호텔, 바에 들를 때면 집어오곤 했다는 성냥은 전화번호나 지도, 가게 상호명이 적혀 있어 유용하다. 기념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예쁜 현대의 것과 달리, 저자의 어린 시절을 장식한 것은 방구석에 놓인 팔각형 모양의 UN 성냥갑이었다. 내복바람의 세 자매가 이불 아래서 그어보다 불을 내 ‘아름답고 치명적인 것의 위험성’을 가르쳐 준….

저자가 주목한 사물엔 에코백이나 선글라스, 와인 코르크와 같이 사소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연필이나 지우개, 타자기처럼 이제는 옛날 물건처럼 여겨지는 것도 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으로부터 시작된 생각 꼬리들이 매우 흥미롭다. 읽는 내내 그 많은 생각들을 잘 이어내는 글쓴이의 능력과 재능에도 새삼 감탄하게 된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소설가의 사물#조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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