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근 서울대 명예교수 “남북한, 언어문화 통합부터 반드시 이뤄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고대부터 현대 남북한-재외동포의 우리말 망라 문법서 펴낸 고영근 서울대 명예교수

원로 국어학자인 고영근 서울대 명예교수(82·사진)가 고대부터 오늘날 남북한과 재외동포의 우리말 문법을 망라한 ‘우리말 문법, 그 총체적 모습’(집문당)을 최근 펴냈다. 95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우리말의 역사적 변화형과 방언, 여러 공간적 변이형을 5년에 걸쳐 연구해 담은 노작(勞作)이다.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명예교수실에서 만난 고 교수는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이 지은 ‘우리말본’을 20대 중반에 꼼꼼히 읽으며 ‘나도 이런 책을 써봤으면…’ 하는 꿈을 가졌는데, 이제 내 학문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책을 냈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와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여기, 거기’라는 말을 ‘잉에, 긍에’라고 하기도 합니다. 15세기 중세 국어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지요. 특히 변방인 옛 6진(六鎭·조선 세종 때 두만강 하류 지역에 설치한 여섯 진) 지역 출신의 말이 그러합니다. 고려인의 말은 러시아어와 중국어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우리말’은 한국어와 조선어(북한·중국 동포의 말), 고려어 등으로 분화한 것을 모두 포괄한다. 고 교수는 이번 책이 “이 같은 변이와 그 원인을 한 체계 위에서 총체적으로 서술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 문법도 서술 대상으로 삼았다.

고 교수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공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모두가 사용할 독일어 규정을 합의한다”며 “남북한의 정체(政體)가 통일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언어문화는 통합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석국어학상(2004년), 삼일문화상(2008년) 등을 받은 고 교수는 현재 국제학술지 ‘형태론’ 편집고문과 ‘이극로박사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언어 연구에서 ‘계통론(공통의 조어·祖語나 언어 사이의 친족 관계를 연구)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봤다.

“일례로 모음조화 현상이 과거에는 알타이 어족의 특징이라고 했지만 아프리카의 여러 언어나 프랑스 방언에도 다 나타난다는 게 드러났지요.”

고 교수는 “우리말은 종결어미로 문장의 형태가 결정되는 특징이 있다”며 “언어 유형론(계통에 관계없이 구조를 기준으로 언어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연구)의 측면에서도 몽골어, 만주어와도 다른 주목할 만한 언어”라고 강조했다.

정년퇴임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노(老)학자의 학구열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그는 이번 책을 쓰기 위해 2013년부터 매일 5, 6시간씩 작업했다. 기초연구 성격의 논문도 해마다 서너 편씩 발표했다. 고 교수는 “옛날 같으면 세상을 떴을 수도 있는 나이지만, 마냥 놀 수는 없고 원래도 공부가 취미다”며 “이제 한국 언어철학사를 써볼까 싶다. 우리 것을 연구해 성과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없더라”라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우리말#우리말본#조선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