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실수요자까지 타격 “수억 전세자금 어떻게 구하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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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집값잡기 총력전]年소득 7000만원 넘으면 대출제한

금융당국이 국토교통부, 국세청과 동시 다발적으로 집값 잡기에 나선 것은 잇단 규제에도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시장 과열이 진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최근 급증한 전세자금대출과 개인사업자대출이 주택시장으로 유입돼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고 이들 대출을 겨냥한 고강도 ‘핀셋 대책’을 이르면 다음 달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전세자금대출 규제 방안의 하나로 전세보증의 소득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해 애꿎은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 “맞벌이 부부, 전세대출 막혀”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전세보증 상품 가입 조건으로 기존에 없던 소득 및 주택 보유 기준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10월부터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00만 원 이하인 가구만 주택금융공사의 전세보증을 이용할 수 있다. 또 무주택자나 1주택 요건도 갖춰야 한다. 고소득자나 다주택자들이 무주택 서민을 위해 운영되는 전세보증을 이용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다만 맞벌이 신혼부부는 연소득 기준이 8500만 원으로 완화된다. 자녀가 1명인 가구는 8000만 원, 2자녀 가구는 9000만 원, 3자녀는 1억 원 이하 기준이 적용된다.

현재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려면 주택금융공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SGI서울보증에서 전세보증을 받아야 한다. 6월 말 현재 은행권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약 75조 원이며 이 중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을 통한 대출이 절반에 이른다.

당장 맞벌이 부부 등 연소득 7000만 원이 넘는 세입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결혼을 앞둔 회사원 김모 씨(32)는 “전세대출 1억 원을 받아 신혼집을 마련할 계획이었는데 소득 기준에 걸려 차질이 생겼다. 투기꾼들 때문에 왜 실수요자가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말했다.

○ 10월부터 DSR 본격 도입

은행들은 3월부터 자율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100%가 넘는 대출을 ‘고(高)DSR’로 분류해 이 기준을 넘는 이들에 대해선 대출 심사를 깐깐히 하거나 대출을 자제하고 있다. DSR는 주택대출만 따진 기존 대출 규제와 달리 주택대출, 신용대출, 할부금 등 개인이 1년간 갚아야 할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연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10월부터는 시범적으로 운영되던 고DSR 기준이 강화돼 모든 은행에 일괄 적용된다. 금융당국은 고DSR 기준을 80% 안팎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득이 낮거나 기존 대출이 많을수록 대출 한도가 우선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에 의뢰해 연봉 5000만 원인 직장인 A 씨의 신규 대출 한도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계산해봤다.

A 씨는 현재 주택담보대출 2억5000만 원(금리 연 3.48%, 30년 만기, 원리금 균등상환 조건), 신용대출 5000만 원(금리 연 3.91%, 1년 만기), 자동차 대출 2000만 원 등 총 3억2000만 원의 대출을 안고 있다. A 씨의 DSR는 68.5%다. 현재 고DSR 100%가 적용됐을 때 A 씨는 1억8390만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고DSR가 80%로 강화되면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은 6720만 원으로 줄어든다.

○ 집값 잡기 역부족

정부가 대출 규제 카드를 추가로 꺼내 들었지만 급등한 서울 집값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유동성 공급이 줄어들어 진정 효과는 있겠지만 가을 이사철 수요와 공급 부족 탓에 정책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은 이미 지난해 8·2부동산대책으로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대출 문턱이 크게 높아졌지만 집값 급등이 계속되고 있어 이번 대책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서울은 지나치게 오른 가격과 대출 규제로 돈 있는 사람들만 움직이는 시장이 됐다. 전세대출이나 개인사업자대출을 활용한 편법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시장을 좌우할 만한 규모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조은아 achim@donga.com·이건혁·주애진 기자
#부동산대책#집값잡기#전세자금대출#대출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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