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원수]권력과는 늘 거리 두는 ‘억강부약’ 헌재되기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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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사회부 차장
정원수 사회부 차장
1988년 9월 1일 출범한 헌법재판소는 다른 헌법기관과 달리 청사가 없었다. 서울 중구 정동빌딩 16, 18층을 몇 달 빌려 쓰다 그해 말 서울시 소유의 옛 서울대사대부고 건물로 옮겼다. 그리고 1993년 6월 1일 서울 종로구 재동에 새로 지은 지금의 청사 준공식이 열렸다.

그날 김영삼(YS) 대통령은 헌재를 찾아 ‘헌법수호’라는 한자 친필 휘호를 남겼다. 또 YS와 이만섭 국회의장, 김덕주 대법원장, 조규광 헌재소장 등은 붓글씨로 방명록에 서명을 했다. YS 휘호와 방명록은 액자에 담겨 헌재 청사 4층 재판관 회의실 벽면에 꽤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지금은 모두 헌재 지하 창고에 보관돼 있다.

당시 준공식 행사엔 초대 재판관 9명 중 1명이 불참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변정수 전 재판관이었다. 청와대 경호처가 발행한 출입증 없이는 헌재 새 청사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통보받은 게 주된 이유였다. 그는 회고록에 “주최자는 헌재고, 대통령은 손님인데 거꾸로 손님이 주인더러 자기 허가 없이는 식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다니…”라며 불참 이유를 자세히 적었다.

변 전 재판관은 일각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불렀던 돈키호테까진 아니더라도 나머지 8명의 초대 재판관과는 결이 달랐다. 6년 재임 동안 64차례 소수의견을 내 ‘미스터 소수의견’이란 별명이 붙었다. 제1야당 추천으로 재판관이 된 그는 임명장을 받는 순간부터 대통령과 여당, 대법원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다른 재판관들에겐 매년 생일 때마다 고급 커프스단추 등을 선물로 보냈는데 변 전 재판관에겐 회갑 때 딱 한 번 나무필통 선물만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재임 중 국회에서 탄핵을 당할 뻔했고, ‘친정’인 대법원으로부터 공개 비판을 받았다.

31일 헌재 3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헌재의 위상은 YS가 ‘헌법수호’ 휘호를 썼던 때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올라갔다. 당시 헌재 내부를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했던 변 전 재판관을 떠올리며 헌재의 나아갈 바를 정리해 봤다.

첫째, 권력과의 긴장 유지다. 변 전 재판관은 대법원 규칙을 위헌이라고 선언했고, 국회 날치기 관행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그는 “국회에서 선출되었다고 국회 눈치를 보고, 대통령 지명으로 되었다고 대통령 의중을 살피고, 대법원장 지명으로 되었다고 대법원 위상이나 걱정한다면 헌재에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라고 일갈했다. 지금의 헌재가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조언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헌재 재판관 9명 중 8명이 교체됐거나 바뀐다.

둘째, 조직 이기주의 배격이다. 헌재는 출범 초기 차관급이던 사무처장을 대법원 법원행정처장과 같은 장관급으로 승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변 전 재판관은 강하게 반대했다. “위상이 올라간다면 국무위원급이 아니라 국무총리급으로 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그러나 위상은 재판을 잘해서 국민의 신임을 얻으면 올라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법원을 보면 그의 지적이 틀린 게 없다. 그가 퇴임한 1994년부터 헌재 사무처장은 장관급이 됐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장관급인데, 요즘도 논란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을 위한 헌신이다. 변 전 재판관은 재판관의 본질이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이고 원칙과 합리에의 순종이라고 믿었다. 또 국가기관의 권위는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되풀이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고 확신했다.

지금의 높은 위상이 추락하지 않도록 헌재가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고 신뢰를 얻게 되길 바란다.
 
정원수 사회부 차장 needjung@donga.com
#헌법재판소#헌법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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