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개도국 생명줄 ‘특혜관세’까지 끊나… 커지는 터키發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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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P 철회 경고에 금융시장 출렁
1976년 개도국 ‘경제개발지원’ 도입… 피지 등 121개국 관세감면 혜택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은 태국 양돈 농가에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태국 6개 지방의 양돈협회는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압박을 중단해줄 것”을 하소연했다. “태국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막고 있다”는 미 전국양돈협회(NPPC)의 청원을 미 정부가 들어준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미 정부는 NPPC 청원을 계기로 태국산 수입품에 적용했던 관세 감면 혜택인 ‘일반특혜관세제도(GSP)’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태국은 돼지고기 시장을 지키려다 지난해 대미 수출액의 13%인 42억 달러(약 4조5400억 원)어치에 주어지던 특혜 관세를 잃어버릴 처지에 놓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미국, 작은 나라들과 무역 싸움에 나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부여했던 관세 면제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미국인 목사 억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터키에 무역전쟁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10일엔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율을 갑절로 올리고 터키산 상품 17억 달러어치에 적용하던 GSP 철회까지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이후 14% 폭락했다.

미국이 태국과 터키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GSP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을 돕기 위해 1976년 도입한 제도다. 현재 피지, 에콰도르 등 121개국의 대미 수출품에 GSP에 따른 관세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GSP가 개도국들에 대한 통상 압박 수단으로 검토되고 있다. 미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10월 자국 기업에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 접근을 허용하고 있는지를 따져보겠다며 GSP 적격 심사를 위한 ‘사전 절차’를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등 주요 교역국과의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낡은 무역법 조항을 다시 꺼내 철강과 알루미늄, 세탁기, 태양광 패널에 관세 폭탄을 부과한 것처럼 개도국에 42년 된 GSP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미국의 GSP 관세 감면 대상 수입액은 2016년 기준 190억 달러로 전체 수입액(2조2000억 달러)의 1% 미만이다. 미국에는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지만 달러 한 푼이 아쉬운 개도국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1차 심사 대상에 오른 아시아태평양 25개국 중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이 심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가을엔 GSP 적격 심사 대상국을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로 확대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GSP에서 탈락하는 개도국들이 나올 경우 트럼프발 무역전쟁의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이 확산되는 가운데 집안 단속에도 나섰다. 그는 유럽연합(EU)의 무역보복으로 생산라인 해외 이전을 발표한 할리데이비슨을 겨냥해 12일 트위터에 “해외로 제조 공장을 옮긴다면 많은 할리데이비슨 소유자들이 회사를 보이콧할 계획이다. 훌륭하다!”고 적었다.

한편 터키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며 신흥국 위기설이 다시 고조되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시장이 일제히 요동쳤다.

1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50%(34.34포인트) 떨어진 2,248.45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5월 4일(2,241.24) 이후 약 1년 3개월 만에 최저치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1.98% 떨어졌고 중국, 홍콩 증시도 1% 안팎의 약세를 보였다.

금융시장 불안에 미국 달러나 일본 엔화 같은 안전자산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가 늘면서 엔화 가치는 이날 0.7% 올라 달러당 110.17엔을 나타냈다. 미 달러가 강세를 보이며 원-달러 환율도 5.0원 급등(원화 가치 약세)한 1133.9원에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터키발 불안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터키의 외환 보유액 상황이 넉넉지 않아 터키 금융권에 자금을 빌려준 유럽계 은행들로 위기가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달러 강세 현상과 외국인 자금의 신흥국 이탈이 이어지면 한국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이건혁 기자
#트럼프#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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