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을 유럽 전역에” 극우 제왕 꿈꾸는 배넌의 위험한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벨기에에 재단 만들고 펀드 모집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 앞두고 의석 3분의 1 목표로 反EU 결집
英독립당 패라지 前대표 합류 선언, ‘하드 브렉시트’ 주역과도 협력 논의
“그는 미국인”… 佛-伊 극우는 견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었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내년 유럽의회 선거를 겨냥해 ‘위험한 실험’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와 포퓰리즘 정신을 유럽에 이식시켜 자신이 유럽 포퓰리즘 극우세력의 제왕이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

배넌은 최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더 무브먼트’ 재단을 설립하고 펀드 모집을 시작했다.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각국에 흩어져 있는 반EU·포퓰리즘 세력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다. 유럽의회 전체 의석수 705석 중 3분의 1(235석)을 차지하겠다는 목표하에 대장정에 착수했다.

배넌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포퓰리즘 세력과 다보스 세력(글로벌리스트) 간의 첫 번째 정면 대결이 벌어지는 내년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을 위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며 “유럽의회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슈퍼그룹’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배넌은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승리를 이끌었던 세력과의 결합을 우선 도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후 가장 먼저 만났던 해외 인사이기도 한 영국 극우정당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전 대표가 합류를 선언했고, 영국 보수당 내 ‘하드 브렉시트’를 이끈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과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과의 협력도 논의하고 있다. 브렉시트의 기운을 전 유럽으로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다.

배넌의 가장 큰 강점은 미 대선에서 승리해 본 성공 경험과 미디어를 활용한 선거 전략에 능하다는 점이다. 선거자금의 위력도 잘 안다. 그는 지난 12개월 동안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을 돌아다니며 유럽 극우정당 리더들에게 조언을 해 왔다.

실제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EU 성향의 포퓰리즘 정당의 돌풍이 예고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27일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극우 세력이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60%나 약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전선과 네덜란드 자유당이 이끄는 국가와자유그룹(ENF)이 현재 35석에서 63석으로 늘어나는 등 반EU 세력의 의석 비율은 10.6%에서 17.3%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내년 3월 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유럽의회 총 의석수는 751석에서 705석으로 줄어든다.

이미 지난 4년 사이 유럽 극우세력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유럽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가진 독일의 경우 2일 공영방송 ARD 여론조사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7%의 지지를 받아 역대 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탈리아 극우 동맹당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1, 2당을 다투고 있다.

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유럽의회 세력인 유럽국민당그룹(EPP·현재 219석)은 180석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왔다. 지난 선거에서 EPP는 그전 선거(274석)에 비해 60석이나 줄어든 바 있다.

그러나 배넌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올 3월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이탈리아 동맹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나 4년 전 유럽의회 선거 때 프랑스 전체 1당을 차지했던 국민전선 마린 르펜 대표 역시 유럽 포퓰리즘 극우세력의 리더 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살비니 대표는 이미 벨기에 오스트리아 독일 스웨덴 극우정당들과 자주 접촉하고 있으며, 르펜 대표도 3월 니스에서 오스트리아 체코 극우정당들과 함께 행사를 열었다. 최근 런던에서 배넌을 만난 르펜의 측근 제롬 리비에르는 “배넌은 미국인이고 유럽 정당에서 그의 자리는 없다. 우리는 배넌이 만드는 어떤 초국가 단체 참여도 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포퓰리즘#극우 제왕#배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