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지휘자 보에미 “北성악가, 악보 없어 테이프 듣고 곡 외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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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5번 방문 伊지휘자 보에미
“10년 전 北서 마스터클래스 맡아… 연주자들 기대이상 실력에 놀랐죠”
8일 세종문화회관서 오페라공연

“어느 날 아주 고급스러운 찻주전자를 선물 받았어요. ‘김정일’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더군요.”

이탈리아 지휘자 마르코 보에미(60·사진)가 호수 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오래전 기억을 꺼냈다. 그는 10년 전쯤 북한 평양에 다섯 번 다녀왔다. 인연은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자신을 주로마 북한대사관 직원이라 소개한 상대방은 완벽한 이탈리아어로 “중국 친구로부터 당신을 소개 받았다. 평양에서 마스터클래스를 맡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평양에서 교류했던 음악인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분단 상황이지만 평양과 가까운 서울에서 공연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그는 8,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서울콘서트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평양에 갈 때마다 그는 2, 3주씩 머물며 연주자들과 교류했다. 음대생이나 연주자, 평양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췄는데 기대 이상의 실력에 놀랐다고 한다. 특히 한 남성 피아니스트의 재능은 북한에 가둬두기 아까울 정도였단다. 하지만 성악가들은 노래에 감정을 담는 게 부족해 많은 지도를 필요로 했다.

“당시 북한 성악가들의 연습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악보 하나 없이 녹음테이프에 의지해 곡을 외워 부를 정도였죠. 그 모습이 안쓰러워 한번은 악보를 여러 장 구해다 줬는데, 누군가 ‘김정일 위원장이 악보를 살펴본 뒤 다시 돌려줬다’고 하더군요.”

4세 때 피아노를 시작한 보에미는 26세에 지휘자로 전향했다.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각종 스포츠를 섭렵한 자신을 ‘호기심 천국’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사랑의 묘약’ 첫 번째 공연은 한국인 성악가들과, 두 번째 공연은 이탈리아 성악가들과 무대에 오른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마르코 보에미#서울콘서트필하모닉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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