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세진]레몬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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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애컬로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1970년 ‘레몬 시장’ 논문에서 중고차 시장에 나온 불량차를 레몬에 비유했다. 겉보기엔 번지르르하지만 맛은 시큼하다는 의미에서다. 상품 정보를 많이 가진 판매자가 정비는 대충 하고 광택만 잔뜩 내서 내놔도 소비자는 잘 모르고 사기 일쑤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 탓에 나쁜 차만 비싸게 팔리면 결국 중고차 시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정보가 경제적 선택에 끼치는 영향을 규명한 그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며 정보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미국에선 새 차도 고장이 잦으면 레몬카라고 한다. 1975년 제정된 레몬법(매그너슨-모스 보증법)은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자동차가 동일한 하자로 두 번 이상 수리하는 결함이 발생하면 교환 및 환불하게 강제했다. 업계는 반발했지만 자동차 업체 간의 경쟁을 촉진해 성능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럽연합은 1999년, 중국에서도 2013년 삼포(三包)법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돼 소비자 권익을 향상시켰다.

▷수입차 점유율 20%를 눈앞에 둔 한국은 전 세계 브랜드의 치열한 격전장. 하지만 소비자는 그만큼 대우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품질에 불만을 품은 소비자가 2억 원이 넘는 벤츠 자동차를 골프채로 부순 동영상을 올리며 업체 망신 주기에 나섰을까. 2011년부터 ‘한국판 레몬법’의 필요성은 제기됐지만 자동차 업계의 반대로 무산되다 지난해 9월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령을 확정한 국토교통부는 내년 1월부터 한국에서도 결함이 있는 신차의 교환·환불이 가능하다고 지난달 말 입법예고했다.

▷경제학자들은 정보 격차가 나는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시장 신호’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최근 유독 한국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는 BMW 자동차를 보면 이런 조언이 항상 통하는 것 같지 않다. 독일 명차(名車) 브랜드라는 시장 신호에 끌려 구매한 자동차가 알고 보니 레몬이라니. 레몬법이 내년에야 도입되는 바람에 한국 소비자를 유독 ‘봉’으로 보는 수입차 업체에 대응할 방법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정세진 논설위원 mint4a@donga.com
#레몬법#bmw#수입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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