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18〉폭풍보다 강한 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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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터너 ‘눈보라’. 1842년.
윌리엄 터너 ‘눈보라’. 1842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 작은 증기선 한 척이 위태롭게 떠 있다. 거센 폭풍과 파도가 곧 배를 집어삼킬 것 같은 급박한 상황을 화가는 거칠고 재빠른 붓질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영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윌리엄 터너의 말년 그림이다. 눈보라 치는 바다의 모습을 터너는 어떻게 이리 생동감 있게 그릴 수 있었을까?

가난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난 터너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천부적 재능을 보였다. 15세에 영국 왕립미술원 전시에 참가했고, 24세에 왕립미술원 준회원에 선출된 후 32세에 그곳 교수가 되는 등 일찌감치 그림 실력을 인정받으며 화가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1842년 이 그림이 전시되었을 때는 혹독한 비평에 시달렸다. 형태가 불분명한 ‘눈보라’는 사실적인 풍경화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어떤 평론가는 ‘비누거품과 회반죽 덩어리’라며 조롱했다. 젊은 평론가 존 러스킨의 생각은 달랐는데, 그는 1843년에 쓴 ‘근대 화가론’에서 ‘바다의 움직임, 안개, 빛이 지금까지 캔버스에 그려진 것 중 가장 장엄하다’며 이 그림을 극찬했다. 사실 ‘눈보라’는 화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조난 경험을 토대로 그린 것이다. 터너는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응수했다.

“이 그림은 이해받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폭풍을 관찰하기 위해 선원들에게 나를 돛대에 묶게 했고, 그 4시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대는 전혀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상황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당시 그의 나이 예순일곱이었다. 생사가 걸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화가로서의 임무를 또렷이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터너의 그림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건, 이미 이룬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혁신적인 예술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했던 행위의 결과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윌리엄 터너#눈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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