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 나서면 숨막혀… 바람 불면 화염방사기 맞는것 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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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년 만에 최악 폭염]슈퍼 폭염에 전국이 몸살

햇빛 가려도 땀 흠뻑… 행인 싹 사라진 홍천 ‘슈퍼 폭염’이 1일 한반도를 덮쳤다. ①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드문 오후에 서울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이 따가운 햇살을 피하려는 듯 종이와 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가린 채 걷고 있다. 
②전북 전주시 덕진구의 한 도로에서 수레에 폐지를 싣던 한 남성이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앉아서 쉬고 있다. ③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가장 높은 기온(41.0도)을 기록한 강원 홍천군 중심가는 인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전주=뉴스1·홍천=이인모 기자
햇빛 가려도 땀 흠뻑… 행인 싹 사라진 홍천 ‘슈퍼 폭염’이 1일 한반도를 덮쳤다. ①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드문 오후에 서울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이 따가운 햇살을 피하려는 듯 종이와 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가린 채 걷고 있다. ②전북 전주시 덕진구의 한 도로에서 수레에 폐지를 싣던 한 남성이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앉아서 쉬고 있다. ③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가장 높은 기온(41.0도)을 기록한 강원 홍천군 중심가는 인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전주=뉴스1·홍천=이인모 기자
“바람이 부니까 마치 화염방사기 불길을 맞는 것 같았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1일 오후 3시 반 강원 홍천군 홍천읍 중심가인 신장대리 거리. 차량만 오갈뿐 시민들의 발길이 뚝 끊겨 마치 ‘유령도시’ 같았다.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고기온인 41.0도를 기록한 홍천은 도시 전체가 한증막이었다. 머리 위로 불을 뿜는 듯한 햇볕이 내리쬐어 조금만 서 있어도 현기증이 났다.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는 열기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111년 만에 대한민국 ‘여름의 역사’가 바뀐 1일, 시민들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슈퍼 폭염’에 혀를 내둘렀다.

○ 난생 처음 경험한 ‘슈퍼 폭염’

1일과 6일은 홍천에 장(場)이 서는 날이다. 평소 같으면 시장과 도심 거리가 북적였겠지만 1일 시장엔 손님을 찾기 힘들었다. 시장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신종선 씨(73)는 “평생 홍천에서 살았지만 이런 더위는 난생 처음”이라며 “너무 더워 손님도 뜸하고 일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1일 오후 홍천의 기온이 41.0도까지 치솟자 강원지방기상청 춘천기상대 직원들은 ‘온도 기준기’를 챙겨 홍천을 찾기도 했다. 강원도에서 그동안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은 적이 없어 관측값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미증유의 폭염’에 홍천지역 축제는 된서리를 맞았다. 이날 개막해 5일까지 홍천읍 도시산림공원 토리숲에서 열리는 ‘홍천강 별빛음악 맥주축제’는 캠핑장 운영을 취소했다. 11, 12일 홍천강 수중보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던 홍천강 수상레포츠 체험 행사도 관광객이 뜸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찌감치 취소됐다.

전국 곳곳의 해수욕장도 울상을 짓고 있다. 6월 23일 개장한 경북 포항시 칠포해수욕장에는 올해 8990명이 찾아 지난해 같은 기간(2만1390명)보다 이용객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전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백영팔 전남 완도 신지명사십리해수욕장 상가협의회장(71)은 “30년 동안 해수욕장 천막상가를 운영했는데 태풍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손님이 없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낮 기온이 39.6도로 자체 기록을 갈아 치운 서울에서도 시민들은 외출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평소 오가는 직장인들로 붐빈 광화문 세종대로조차 인적이 드물 정도였다. 땡볕이 내리쬐는 광화문 거리를 지나던 강정미 씨(25·여)는 “땀 때문에 화장은 다 지워지고 열기는 눈을 뜨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인근 직장인 한범석 씨(45)는 “실내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면 열기가 확 느껴져 숨이 탁 막힌다”고 말했다.

대폭염의 해로 기록됐던 1994년이 떠오른다는 중·장년층도 있었다. 자영업자 김석진 씨(54)는 “아직도 지독히 더웠던 1994년의 여름을 잊지 못하는데 그때 서울의 기록(38.4도)을 넘어섰다니 놀랍다”며 “거리가 온통 찜질방 같다”고 말했다.

○ 한낮 야외작업 전면 중단 지시

지방자치단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이날 한낮 기온이 39도를 넘긴 경기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용인과 성남은 비공식 기록) 등은 살수차를 동원해 연신 물을 뿌려댔다. 50도 이상으로 달궈진 도로에 물을 뿌려 지열 온도를 2∼3도 낮추면 ‘도심 열섬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서울시는 폭염에 속수무책인 쪽방촌 주민 3200여 가구에 얼린 생수 6400여 병을 전달했다. 또 폭염 취약계층 1200여 가구와 복지시설 등에 선풍기와 쿨매트 등 냉방물품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중구도 야외작업을 하는 공공일자리사업 참여자 100여 명에게 아이스팩이 부착된 얼음조끼를 지급할 예정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축 토목 공사의 낮 시간대 작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또 농어민의 낮 시간대 작업 피하기 등도 적극 권고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산하기관과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긴급 안전과 관련된 작업이 아니면 폭염이 심한 낮 시간대에 작업을 중지하거나 작업을 며칠 연기할 것’을 요청했다. 민간 건설사업장에도 공사 중지를 권고했다.

○ 동풍으로 달궈진 서울 홍천

사상 유례없는 ‘슈퍼 폭염’은 극서(極暑)지로 통하는 대구나 경북보다 대부분 영서지방에서 나타났다. 대구 경북보다 서울 홍천이 더 뜨거웠던 것은 연이은 동풍의 영향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열대저압부로 약화된 12호 태풍 ‘종다리’가 북상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저기압이 만들어낸 동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 바람이 태백산맥을 타고 넘으며 뜨거워진 공기가 1차로 서쪽 지방을 덮쳤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북동쪽으로 더 커지면서 또다시 동풍을 발생시켰다. 영서지방은 뜨거운 동풍의 연타를 맞은 셈이다. 특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홍천 등은 달궈진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채 정체되면서 기온이 크게 올랐다.


3일부터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서서히 남하하면서 동풍 대신 남서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뜨거운 바람이 소백산맥을 넘어 대구경북지역을 달구면서 이 지역 온도가 다시 영서지방보다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최소 11일까지 전국적인 폭염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 / 홍천=이인모 / 유근형 기자
#폭염#날씨#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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