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南北美 3자 종전선언’ 제안… 김정은 “中포함” 맞서 무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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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회담 논의 뒤늦게 알려져

북-미가 종전선언을 놓고 비핵화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남북미 3자 간 종전선언을 제안했으나 김정은이 거부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김정은이 종전선언을 강하게 요구하면서도 “중국을 포함한 4자 선언이 돼야 한다”며 선을 그었기 때문. 싱가포르 회담 후에도 비핵화 조치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김정은이 중국의 개입을 경계하는 미국의 ‘약점’을 꼭 집어 4자 종전선언을 고집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김정은, 트럼프가 종전선언 제안했지만 “중국 없이 안 돼”

북-미 비핵화 협상에 정통한 복수의 외교 소식통은 30일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의 주체를 남북미 3국으로 제안했으나 김정은이 중국이 제외된 종전선언 체결에 부정적이었고 그래서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달 초 평양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직후 외무성 성명을 내 “종전선언을 빨리 발표하는 것은 조미 사이 신뢰 조성을 위한 선차적 요소”라며 촉구했는데 이 역시 4자 종전선언을 촉구한 것이라고 한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3자’ 또는 ‘4자’로 주체가 명기됐던 종전선언은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5월 22일 백악관 회담을 통해 급격히 ‘3자’로 균형추가 기울었다. 실제로 한미는 싱가포르에서 ‘3자 종전선언’을 심도 깊게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무부는 종전선언이 국제법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도 집중 검토했다고 한다. 정전협정 이후 60여 년간 미국이 만들었던 대북 압박용 법안이나 정책이 종전선언과 충돌하지 않는지, 한미 동맹과 대북 군사적 옵션에 미치는 영향까지 면밀히 살폈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전체적인 틀로 봤을 때 종전선언이 향후 비핵화 협상에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문재인 정부, 종전선언문 가안까지 작성

청와대는 종전선언문 가안까지 마련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것은 아니지만 실무적 차원에서 북-미 정상회담 후 바로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도 있어 선언문 가안을 마련해 놨었다”고 전했다. 이어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라 정상들이 마음만 먹으면 비핵화 이행 여부와 상관없이 할 수 있다”면서 “법적 절차가 얽혀 있는 평화협정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판문점 선언에서 가능성을 열어놨던 3자 선언을 트럼프 면전에서 거부한 것은 결국 중국의 강한 입김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국은 최근 외교채널을 동원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도 종전선언 참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5일 국회에 출석해 “중국의 참여는 종전선언이란 합의에 무게를 더하는 방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미 외교가에선 미국이 비핵화 과정에 중국의 개입을 어느 정도 용인할지가 비핵화 및 종전선언 논의의 중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의 본격 개입을 고민하고 있다. 중국이 종전선언에 참여하면 비핵화의 결과로 이어질 평화협정의 당사국이 되고, 그만큼 동북아의 새 질서를 짜는 데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부담이다.

그러나 종전선언 논의가 늦춰지면 비핵화 조치도 지연될 가능성이 큰 만큼 ‘전술적 선택’을 해야 할 시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현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핵 신고 및 검증을 조기 수용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중국의 참여를 받아들이는 중재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전선언에 중국이 들어오면 중국도 향후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책임을 지게 되며 대북제재 유지의 의무도 더 커진다”면서 “중국 배제론이 아닌 활용론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 기자

#트럼프#종전#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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