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근로소득자 40% 한 푼 안 내고 중·상층 부담 더 늘린 ‘조세 포퓰리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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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세전 연 소득 6500만 원이 넘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금은 늘어나고 그 이하인 서민과 중소기업의 세금은 줄어든다. 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고소득층과 대기업에서 7800억 원의 세금을 더 걷고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에 3조2000억 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2018년 세법 개정방향’을 어제 발표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 지급 범위와 규모는 확대되는 한편으로 종합부동산세와 주택임대소득세 등은 강화된다.

정부가 334만 가구에 근로장려금 3조8000억 원, 111만 가구에 자녀장려금 9000억 원 등 소득 재분배에 모두 4조7000억 원을 쓰기로 하면서 이 부문 지원액은 지난해 1조7600억 원보다 2.7배나 늘어나게 된다. 정부가 취약계층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을 2배로, 지급액은 3배로 늘리면서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고취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 대상이 된 고소득층의 기준이 연봉 6500만 원으로 다소 낮게 책정된 것은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높인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단위 농협이나 수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에 준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비교적 쉽게 받았던 비과세 혜택이 사라진 것도 비슷하다. 연봉 6500만 원 이상 근로자는 10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세제 개편 과정에서 여전히 서민과 고소득층의 ‘편 가르기’ 정서가 반영된 데 대해서는 ‘조세 포퓰리즘’의 그림자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기준으로 근로소득자의 약 40%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현실에서 이 비율을 줄이려는 노력은 뒤로한 채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등 조세 저항을 최소화한 쉬운 징세를 택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영국(3%)이나 일본(15%)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면세자 비율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의 원칙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납세가 국민의 기본 의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국민적 자존감을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단 세금은 걷되 다른 지원을 통해 복지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법 개정안의 무게추가 성장보다 분배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점도 아쉽다. 정부는 블록체인, 양자컴퓨팅 등 4차 산업혁명 신기술 연구개발(R&D) 비용을 세금 감면 대상에 포함시키고, 혁신성장 관련 시설 자산의 감가상각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가속상각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이것만으로 얼어붙은 기업의 투자, 고용 심리를 되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이 장기적인 투자를 고민할 만한 상시적이고 적극적인 세제 지원에 대한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세금#종합부동산세#주택임대소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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