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재명]제주도 공시가격을 위한 변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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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명 산업2부 기자
박재명 산업2부 기자
“비싼 집에 사는 제주 사람들을 우리가 왜 걱정해야 하나요.”

이달 16일 공시가격 상승에 따른 제주도민의 어려움(본보 16일자 B1면 참조)이 동아일보 지면에 소개되자 기자의 개인 이메일로 이 같은 항의성 메일이 여러 통 도착했다. 제주도 공시지가가 최근 5년 동안 갑절로 오르자 기초연금을 신청한 제주지역 노인 4396명 중 41.7%인 1833명이 연금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고, 지역 대학생의 장학금 수령액이 1년 만에 12.9% 줄었다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상당수 독자가 “제주도민들의 집값이 오른 만큼 혜택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수습기자 시절부터 “기사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녀야 한다”고 배웠다. 기사를 읽는 독자가 또 다른 의문을 품는 것은 기사를 잘못 썼다는 증거다. 이번 칼럼은 당시 기사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쓴다. 첨부된 사진은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가 확보한 제주 거주 노인 A 씨의 집이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건물면적 50m²(약 15평) 주택이지만, 2017년에만 공시가격이 22.2% 올랐다. 소득이 없는 A 씨는 그해 생계급여(월 50만1000원)와 주거급여(최대 7년 1026만 원) 대상에서 모두 탈락했다.

그동안 받던 보조금을 수령하지 않는 데서 A 씨의 부담은 끝이 날까. 아니다. 건강보험료 인상과 재산세 상승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공시가격을 기초로 대상자를 결정하는 세제, 복지 관련 항목은 총 61종이다. 설령 집을 팔고 제주도 내 다른 곳으로 이사 가려고 해도 모든 주택 가격이 비슷하게 올랐다. 결국 세입자가 되어야 예전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연구한 정 교수는 “더 가난해져야만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모순”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제주 노인이 올해만 1800명을 넘어선다. 이들 대부분은 세간의 오해처럼 10억 원 넘는 제주도의 호화 전원주택 보유자가 아니라, A 씨 집과 비슷한 수준의 주택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 당국자들이 “저소득층에게는 공시가격 급등이 저주”라고 말하는 이유다.

공시가격의 현실화는 현 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제주를 덮친 ‘공시가격의 저주’가 향후 몇 년 내 전국으로 확대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저평가된 고액 자산가들의 토지 가치를 현실화시키면서도 선의의 피해자를 줄일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하다.
 
박재명 산업2부 기자 jmpark@donga.com
#제주도#공시가격 상승#기초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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