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소설이란, 다른 이에게 던지는 한 줄의 질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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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보는 남자’ 펴낸 김경욱
죽은 남편 얼굴 이식받은 남자와 열애에 빠지는 여인의 이야기

김경욱 소설가는 ‘거울 보는 남자’를 쓸 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이식받은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경욱 소설가는 ‘거울 보는 남자’를 쓸 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이식받은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소설은 한 남녀가 “에드워드 호퍼 풍으로 앉아 있다”는 묘사와 함께 시작한다. 어둡고 한적한 뒷골목 술집에 앉은 남녀를 그린 ‘밤의 사람들’(1942년)로 유명한 호퍼는 닳고 닳은 도시의 고독한 분위기를 담아낸 미국 화가. 좋아서 만나고, 연애하고, 한집에서 살지만 자기를 감추고 명확히 표현하지 않는 주인공들은 단조로우나 복잡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소설가 김경욱 씨(47)에게 ‘그들의 사랑이 좀 어렵다’고 털어놓자 그는 강지희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려 “‘30금(禁) 소설’이라 그런가 보다”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해 봄 죽은 남편의 얼굴을 이식받은 남성과 편지를 주고받은 여성에 대한 기사를 읽었어요. 왜 만나지 않을까, 그리고 실제 만나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저 역시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글쓰기를 시작했죠.”

소설 ‘거울 보는 남자’(현대문학)는 작가의 설명처럼 남편이 사고로 죽은 뒤 그의 얼굴을 이식받은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여인의 이야기다. 사랑과 욕망의 “필연적인 엇갈림과 헛됨”이 주제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관계는 오히려 더 깊은 사랑의 속성을 얘기하기 위한 장치. 1인칭 여성 화자와 두 남성의 인연을 액자소설식 구성으로 전개하는 덕분에 양파 껍질을 벗기듯 묘하게 빨려 들어간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소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나를 욕망해주길 바라는, 원천적으로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이잖아요. 대다수 사람들은 그 허상과 환상을 찾아다니는데, 그러면 실패할 수밖에 없죠.”

죽은 남편의 완벽한 대체물을 찾아 사랑받고자 하는 여성과 거울 속 이식받은 새 얼굴을 사랑하게 된 남성처럼 사랑은 늘 엇나가고 빗나가는 것일까. 김 작가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사랑의 허상을 인정하고 지워내는 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 뒤, 이내 “소설이 다양한 결로 읽혔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문학이란 숨겨진 깊은 뜻을 보물찾기처럼 찾아내야 하는 대상이란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때문에 사람들이 책에서 점점 멀어지죠. 그 자체가 별로 재밌는 일은 아니잖아요?”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그는 “이미지와 영상이 보편화된 시대라 독자에게 다가갈 방법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엔 얼굴을 이식받은 남성과 남편의 표정 묘사를 위한 간단한 그림을 활용했다.

“제가 알고 싶은 게 있을 때 소설을 써요. 이 소설이 물음표의 시작이 돼서 여러 사람의 생각을 더 알 수 있길 바랍니다. 다른 이의 생각을 끌어내기 위한 한 줄의 질문 혹은 마중물, 저에게 소설이란 그런 거예요.”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거울 보는 남자#김경욱#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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