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입자 못찾고 전세금 뚝뚝… “내 전 재산이 불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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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번진 역전세난… 세입자 촉각

경기 용인시 처인구에 사는 김모 씨(32)는 이사를 앞두고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뻔했다. 2년 전 1억6000만 원이던 아파트 전세금이 최근 1억2000만 원까지 떨어진 탓이다. 집주인은 당초 전세금에 자기 돈 3000만 원만 얹어 이 집을 샀다. 이른바 ‘갭투자’를 한 것이다. 하지만 전세 시세가 떨어진 데다 세입자 찾기도 어려워지자 계약을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김 씨는 2년 뒤에는 전세금 돌려받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이사를 고수했다. 실랑이 끝에 결국 집주인은 제2금융권 대출로 부족한 전세금을 메워줬다.

부동산 시장 안정으로 전세금이 약세를 보이면서 ‘역(逆)전세난’(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 현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16일 인천 송도국제도시 풍림아이원 아파트 인근 S공인 관계자는 “전세가 잘 안 나가는 1층 집주인들의 경우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돌려줘야 할 정도로 시장이 안 좋다”고 했다. 연말에 새 아파트 9510채(헬리오시티)가 한꺼번에 입주하는 서울 송파구에선 세입자가 왕이다. 이곳 E공인 대표는 “전셋집 찾는 사람보다 ‘세입자 있냐’란 집주인 전화가 훨씬 더 많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높은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을 이용해 집을 사들인 갭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갭투자가 한창이던 2016년 6월 75.1%였던 서울 전세가율은 지난달 65.4%로 떨어졌다.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인근 O공인 관계자는 “이 일대는 갭투자의 성지라고 할 정도로 투자자 문의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문의가 끊겼다”고 했다.

실제로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도 크게 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HUG가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세입자에게 집주인을 대신해 전세금을 내준 사례는 142건으로 지난해(33건)의 4배에 이른다. 전세금반환보증은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것을 대비해 세입자가 드는 일종의 보험이다. 전세금 분쟁에 대비해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세입자는 올해 상반기(1∼6월) 4만1507명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가입건수(4만3918명)의 94%에 이른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전국적으로 신규 입주 아파트가 많아 갭투자자를 비롯해 전세금 반환에 애를 먹는 집주인이 당분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들어 전국 주택 전세금은 0.99% 떨어졌다. 특히 지방의 경우 전세금이 2년 전보다 떨어진 곳이 많아 새 세입자를 구하더라도 집주인이 웃돈을 얹어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마련해줘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충남은 2016년 6월 1억1441만 원이었던 전세금 중간값(액수대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오는 값)이 올해 6월 1억739만 원으로 떨어졌다. 경남(1억2870만 원→1억2223만 원)과 경북(1억284만 원→9831만 원)도 상황이 비슷하다. 경북 구미시 G공인 관계자는 “집값이 전세금보다 낮아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 매물도 나온 지 오래”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역전세난을 완화하기 위해 은행이 취급하는 ‘전세자금 반환보증’의 가입 절차를 간소화할 방침이다. 또 금리 상승과 집값 하락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전세자금대출도 관리할 계획이다.

강성휘 yolo@donga.com·이건혁 기자
#전세금#역전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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