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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딴짓이 장사밑천… 이젠 후배들 ‘딴짓’ 도우려 장학금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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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딴짓이 장사밑천… 이젠 후배들 ‘딴짓’ 도우려 장학금 냈죠”

김수연기자 입력 2018-07-12 03:00수정 2018-07-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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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드림]KAIST에 ‘창업 장학금 1억’
88년생 청년 창업가 박상재씨
발효설비가 들어찬 경기 남양주시의 유기농 발효음료 제조업체 ‘부루구루’ 공장 내부. 이 회사를 창업한 박상재 대표(30)가 출시를 앞둔 발효음료 ‘콤부차’의 시료를 채취해 에탄올 함량을 측정하고 있다. 2015년 KAIST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박 대표는 최근 후배들의 창업을 독려하기 위해 모교에 ‘스타트업 장학금’을 기부했다. 남양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외국에선 경영학석사(MBA) 출신의 20∼30%가 창업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용기 있게 창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2015년 KAIST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박상재 씨(30)의 프로필은 화려하다. 국내외 맥주양조대회 1위, 수제맥주 스타트업 창업, 유기농 발효음료 제조업체 ‘부루구루’ 대표…. 창업가의 꿈을 이룬 그가 최근 모교를 찾았다. 후배들을 위한 창업장학금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5년간 매년 2000만 원씩, 총 1억 원을 기부할 예정이다.

30세 청년이 장학금을 내놓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보통 자신의 삶이 안정되고 난 뒤에야 남을 도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경기 남양주시 ‘부루구루’ 공장에서 그를 만나 기부를 결심한 사연을 들어봤다.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수업이 지루하다는 이유로 17세에 고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렀다. 호주 시드니대 상경계열을 졸업했지만 취업엔 관심이 없어 KAIST MBA 과정에 입학했다.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그때 수제맥주에 빠졌다. 틈틈이 맥주 레시피를 보던 그는 기숙사에서 몰래 맥주를 빚다 발각돼 퇴소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의 수제맥주 사랑은 결국 귀중한 장사 밑천이 돼 그 기술로 창업을 했다. 좋아하는 분야를 좇아 창업을 한다는 것은 그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창업을 부담스러워했다. 가족 부양, 부채 상환 등의 과제를 안고 있는 청춘들에게 창업은 먼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때 ‘창업으로 돈을 벌면 창업장학금을 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매년 선발된 1명에게 장학금 2000만 원을 지급하는데, 이 돈이면 몇 달 치 생활비라도 해결되니까요. 딴짓을 할 여유가 있으면 창업할 용기도 생기지 않을까요?”

‘세병(世秉) 스타트업 장학기금’이란 명칭은 자신의 호에서 따왔다. 만 20세가 된 자녀에게 호를 지어주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아버지가 지어줬다. 직역하면 ‘세상을 잡으라’다. 그는 “세상을 소유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수익을 창업생태계에 환원하며 이름값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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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맥주 회사를 공동창업해 성공을 거둔 그는 올해 초 최근 ‘부루구루’로 새 도전을 시작했다. 미생물을 이용해 식음료를 만드는 행위를 뜻하는 ‘브루잉(brewing)’에 도사를 가리키는 ‘구루(guru)’를 합성한 이름이다. 주력 상품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콤부차’다. 유산균이 가득한 발효음료로 해외에선 직장인들이 건강관리를 위해 애용한다.

몇 년 전 세계적 모델 미란다 커가 TV에 나와 “매일 콤부차를 마신다”고 말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톡 쏘는 맛이 샴페인과 비슷해 파티장에도 자주 등장한다.

“맥주와 콤부차는 공정이 거의 똑같아요. 수제맥주를 개발할 때처럼 설비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었죠.”

부루구루의 상품 중엔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디자인 개발에 참여한 제품도 있다. 장애인 5명이 음료를 마셔보고 떠오르는 느낌을 자유롭게 그린 것을 전문 디자이너가 모아 캔 제품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하나 팔릴 때마다 해당 장애인들에게 로열티도 지급된다. 지속적인 치료와 교육이 필요한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취지다.

틀에 박힌 ‘훈훈한 미담’으로 끝날 것 같은 인터뷰 도중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모교에 기부한 장학금은 왜 해마다 2000만 원일까. 한 번에 1억 원을 내면 부담되기 때문일까? 박 대표의 대답이 의외였다.

“국내 세법상 개인 기부금은 1년에 3500만 원까지만 세액공제가 가능하거든요.”

약정한 기부금 1억 원을 한 번에 내는 것보다는 5년간 나눠 내는 것이 본인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자칫 실망스러운 대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감추고 싶지 않다고 했다.

“기부가 거창한 일이고, 엄숙한 행위라고 여기는 문화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남양주=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kaist#장학금#박상재#부루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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