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명건]화(禍)를 부르는 불화(不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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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사회부장
이명건 사회부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검찰 경찰이 지긋지긋할 것이다. 지난 석 달 동안 자신과 부인, 그리고 두 딸이 수시로 검경에 불려가 포토라인에 섰고, 아들이 고발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훨씬 오래전에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또 현재 검찰은 경찰이 그에 대해 수사했던 사건을 넘겨받아 기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조 회장은 19년 전인 1999년 검찰에 구속됐다. 대한항공 회장이었던 50세의 그는 아버지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동생 조수호 한진해운 사장과 동시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재벌그룹 회장 3부자가 한꺼번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673억 원의 조세 포탈과 해외 리베이트 1160억 원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됐지만 4개월 만에 보석 석방됐다.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보증금 2억 원을 내고 풀려났다.

당시 재계와 검찰 안팎에서는 장남인 그를 포함한 4형제 간 경영권 승계 경쟁이 국세청의 탈세 고발로 시작된 수사를 촉발시켰다는 얘기가 돌았다. 한진의 지배권이 그에게 집중되는 흐름에 제동을 걸려는 모종의 배경이 있다는 것이었다.

조 회장은 2004년 다시 대검 중수부에 불려갔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에 불법 대선자금 20억 원을 전달해서다. 불구속 기소돼 법원에서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그때 작심하고 집안을 정비했어야 한다. 2002년 11월 숨진 아버지의 유산 분배에서 그가 알짜를 차지하자 일부 동생이 드러나게 반발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유언 조작론’까지 제기했다. 두 차례의 대검 중수부 조사 결과가 각각 구속 4개월 만의 보석 석방과 벌금형으로 마무리되자 안도했던 걸까.

결국 그는 2005년 차남과 4남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에 의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당했다. 또 유산 분배와 관련한 민사소송을 치러야 했다. 고소 건은 무혐의를 받았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법정 유산 다툼에 수년 동안 끌려다녔다.

그리고 2014년 12월 큰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졌다. 조 회장은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이는 올 4월 둘째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이 불거지자 다시 한 대국민 사과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언론에 배포한 사과문에서 “제 여식이 일으킨 미숙한 행동에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사건을 일으킨 딸을 현직에서 물러나게 한 건 똑같았다.

조 회장은 그 중간에라도 집안을 정비했어야 한다. ‘땅콩 회항’ 이후 ‘물컵 갑질’ 전까지 3년 4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부인과 딸이 회사 직원이나 협력사 관계자들에게 막말 고함을 지르고 위해를 가하는 습성을 못 고쳐 집안은 물론 회사까지 쑥대밭이 됐다. 지난해 조 회장은 자택 인테리어 비용 30억 원을 회사에 떠넘긴 혐의로 경찰에 의해 두 차례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검찰은 영장을 반려한 뒤 사건을 넘겨받아 지금도 수사 중이다.

한진 일가의 19년을 겉으로 보면 탈세 고발로 검찰 수사가, ‘물컵 갑질’ 녹취로 경찰 수사가 시작된 것 같다. 하지만 근원의 실체는 재산 싸움과 주변 사람들 하대로 인한 갈등, 즉 불화(不和)다. 그게 일부 공개되자 수면 아래에 잠겨 있던 다른 치부가 쏟아져 나왔다. 정보와 첩보가 검경에 밀려들어 부부와 3남매 가족이 모두 수사 대상이 됐다. 불화가 화(禍)를 부른 것이다. 재벌 수사는 그렇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조양호#한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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