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찾는 고행… 사진과 신앙의 길은 닮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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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사진’ 찍어주는 이동익 신부

이동익 신부는 사진과 사제 영성은 빛(그리스도)을 기다리고 찾아간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말했다.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이동익 신부는 사진과 사제 영성은 빛(그리스도)을 기다리고 찾아간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말했다.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달 2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성당에서는 97세 박점이 할머니를 비롯해 노인 160여 명이 카메라 앞에 섰다. 모처럼 화장도 하고 화사한 옷으로 차려입은 이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노인들의 ‘장수 사진’ 퍼레이드였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이는 성당의 주임신부인 이동익 신부(62). “예전에는 영정 사진이라고 했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죠. 요즘에는 찍어두면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신다고 해서 장수 사진으로 부르더군요.”

개인전과 단체전 등 17차례 전시회를 열 정도로 작가로서도 인정받은 그는 올해 초부터 가톨릭신문에 사진과 묵상 글을 싣는 ‘이동익 신부의 한 컷’ 코너도 연재하고 있다. “신부님, 사진작가라는데 우리 한번 찍어 달라”는 주변의 요청이 장수 사진을 촬영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여러 번 벼르다 조명과 스크린 등 장비를 구해 ‘대사’를 치렀다는 게 이 신부의 말이다.

1983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2013년 이 성당에 부임하면서 30년 만에 뒤늦게 처음으로 본당 신부가 됐다. 가톨릭계의 대표적인 생명윤리 전문가인 그는 가톨릭대 교수와 가톨릭중앙의료원장을 지냈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이동익 신부가 찍은 ‘열정’이란 제목의 작품. 이동익 신부 제공
미국 애리조나에서 이동익 신부가 찍은 ‘열정’이란 제목의 작품. 이동익 신부 제공
그가 본당 신부로 활동하면서 새롭게 눈뜬 것이 노인 문제였다. 주임 신부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경찰을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말로만 듣던 고독사였어요. 평생 생명운동을 하면서 생명윤리를 강조해 왔는데 현장에서 만난 생명 문제는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우리 성당 구역 내의 가톨릭 신자 독거노인만 49명이니 훨씬 많다고 봐야죠.”

2013년 가을 노인들을 돕는 ‘요한 바오로회’가 성당 내에 결성됐다. 매일 오전 안부 전화를 걸거나 가정을 방문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돕는 자원봉사자 모임이다. 2년 전부터는 봉사자와 노인들이 함께 영화 관람을 시작했는데 평생 처음 극장을 왔다는 이들도 있었다. 한 달에 두 번 사제관으로 노인을 초청해 저녁을 먹는 시간도 생겼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나눌 수 없는 노인들도 적지 않아요. 성당의 경우 신부 영향력이 큰 게 사실입니다. ‘우리 신부가 내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표정에 활기가 생긴 분도 있어요.”

외로움과 질병으로 인한 장애, 빈곤은 노인들의 대표적 어려움이다. 이 신부는 “장애와 빈곤은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지만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노인들이 잊혀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는 추가로 장수 사진을 찍어 달라는 이들의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신부는 촬영 중 살아가면서 힘든 일과 다툼이 많은데 죽은 다음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느꼈다고 했다. 이번 여름 중 노인들과 자원봉사자까지 300명을 촬영한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사진과 사제 영성에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사진은 빛을 기다리거나 찾는 과정인데 때론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사제의 길에서는 그리스도가 빛이죠. 그 삶을 따르는 과정에도 어려움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진을 좋아하는 사제들끼리 사진 작업 나갈 때 ‘오늘 주님 만나러 간다’고 하죠. 하하.”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이동익 신부#장수 사진#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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