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禁男입니다” 황당한 수영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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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14곳 남성 출입금지 논란

“남자분들은 안 돼요.”

대학생 장모 씨(25·서울 동대문구)가 최근 집 근처 수영장을 찾았다가 들은 말이다. 수영장 이용을 거부당한 것이다. 이곳은 서울시립청소년수련관 부설 수영장이다. 장 씨는 수영장 직원의 설명을 듣고 황당했다. 오전 9시부터 11시 50분까지는 ‘여성 수영 시간’이라 아예 등록조차 안 된다는 것이다. 장 씨는 “레인 한 곳에서만 수영하는 것도 안 되냐”고 물었다. 수영장 직원에게서 “남성이 이용할 탈의실 자체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오전 시간에는 남성 탈의실이 통째로 여성용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방학을 앞두고 운동을 하기 위해 수영장에 등록하려던 장 씨는 결국 발길을 돌렸다.

같은 수영장에 다니는 김모 씨(59·여)도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김 씨는 얼마 전 퇴직한 남편과 함께 수영을 하기로 하고 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오전 시간에는 여성만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결국 마땅한 시간대를 찾지 못해 포기했다. 김 씨 부부는 함께할 수 있는 다른 운동을 알아보고 있다. 김 씨는 “요즘 같은 세상에 남녀를 이렇게 갈라놓기도 하냐”며 의아해했다.

서울시립청소년수련관은 서울시로부터 운영지원금을 받는 기관이다. 특히 이곳의 부설 수영장은 접근성이 좋고 비용이 저렴해 주민들이 많이 찾는 생활체육시설이다. 각급 학교의 여름방학 시즌인 7, 8월에는 이용자가 몰려 선착순 경쟁을 할 정도다.

그러나 본보가 서울지역의 14개 시립청소년수련관 부설 수영장의 운영 방식을 확인한 결과 모두 오전을 ‘여성 전용’ 시간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대부분 오전 9시부터 11시 50분까지 ‘여성수영교실’이나 ‘주부수영교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남성의 이용을 제한했다. 남성은 새벽이나 오후에만 이용이 가능했다.

이용자들은 남성 역차별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남성뿐 아니라 일부 여성도 이 같은 운영 방침에 비판적이다. ‘여성은 당연히 오전에 한가하다’고 여기는 구시대적 인식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청소년수련관들은 운영 편의상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탈의실과 샤워시설 수는 남녀가 똑같은데 오전 시간 이용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한 청소년수련관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 수영장을 개장할 당시 오전에 남성 이용자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등록했던 남성들도 여성이 너무 많으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부터 효율적 관리를 위해 여성 전용 시간을 만든 것이 지금까지 유지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금남(禁男) 시간대’ 규정이 최근 성평등 상식과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표면적으로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전히 여성을 오전에 한가한 ‘주부’로만 규정하는 것과 같다”며 “공공시설물인 만큼 특정 성별을 분리해 이용권을 박탈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청소년수련관은 자체적으로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성차별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최근 인지하고 남성도 오전에 수영을 할 수 있도록 9월부터 탈의실 증축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오전#남자금지#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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