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된 일본식 가옥… 동양척식주식회사… 시간이 앉은 목포 유달동, 역사가 되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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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공간 단위 등록문화재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가보니


목포 시내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유달산 기슭에 위치한 유달동. 동네 어귀에는 겉모습만 봐서는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허름한 슈퍼마켓이 하나 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일본식 다다미방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일본의 가정집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1935년 식민지 조선에서 각종 농산물과 나무 등을 수탈해 가던 후쿠다농업주식회사의 사택으로, 80년 넘는 역사를 지녔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강록 씨(59)는 “10여 년 전 이 집을 구입했을 때 다다미 구조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다소 낡은 집이라 불편한 점도 있지만 오래된 역사와 함께 산다는 것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유달산 방향으로 걸음걸이를 옮기면 개교한 지 120년이 된 유달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한쪽에는 1929년 세워진 3층 규모의 옛 목포공립심상소학교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처럼 근대의 정취가 가득한 유달동 일대를 거닐다 보면 마치 1920년대 거리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은 옛 목포 화신백화점 건물. 수직·수평선이 강조된 기하학적 형태의 외관과 아치형 창문 등 모더니즘 건축 기법을 적용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대표적인 근대 문화재다. 목포=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은 옛 목포 화신백화점 건물. 수직·수평선이 강조된 기하학적 형태의 외관과 아치형 창문 등 모더니즘 건축 기법을 적용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대표적인 근대 문화재다. 목포=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최근 문화재청은 전남 목포시 유달동·만호동 일대 11만4038m²를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여 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고 예고했다. 근대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하는 등록문화재는 2001년 도입한 후 건축물이나 서적처럼 개별 문화재 단위로만 등록이 진행됐다. 그러다 ‘목포 근대∼’를 포함해 전북 군산시와 경북 영주시 지역 일대가 공간 단위의 등록문화재가 된 것. 문화재청은 “선(線)과 면(面) 단위 등록제를 도입하면서 문화재를 맥락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찾은 목포시 유달동·만호동에서는 근현대사의 자취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1897년 개항 이후 목포는 목포항과 목포역 등 교통의 요지로 자리매김하며 근대 자본주의가 꽃핀 도시였다. 덕분에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번성한 지역에만 설치됐던 일본 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목포지점, 목포 화신백화점 등이 자리를 잡았고,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박윤철 목포시 학예연구관은 “일제강점기 때 호남 지역에서 수탈한 물자가 목포항에서 배에 실려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었다”며 “당시 관공서와 상업가가 혼재된 독특한 경관을 간직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문화재도 곳곳에 있다. 일제의 자본으로 세운 화신백화점에 대항해 조선 부녀자들이 직접 설립한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이 대표적이다. 1937년 11월 17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동아부인상회가 목포의 대백화점”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민족자본의 저력을 보여준 곳이었다. 현재 ‘어쿠스틱 기타’ 가게로 사용되는 한 상점은 일제 때 지은 건물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목포지역의 지도자 안철 장로(1945∼2003)가 운영하던 동아약국 건물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김용희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사무관은 “미국 시애틀 등에서 성공을 거둔 ‘메인 스트리트’ 프로젝트나 일본의 근대 유산을 활용한 ‘삿포로 팩토리’처럼 지역 단위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유산과 도시재생 사업을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의 새 모델로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목포=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목포#유달동#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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