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의 프랑스 “면목 없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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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묘역 팡테옹에 男 76명-女 5명… 파리역 303개중 여성이름 7개뿐

“당신은 여성과 정의를 위해 싸웠습니다. 프랑스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일 파리의 팡테옹 앞에서 ‘여성 인권의 대모’로 통하는 시몬 베유를 향한 추도사를 읽어 나갔다. 파리 중심에 있는 팡테옹은 프랑스를 빛낸 국가적 영웅들이 안장된 곳으로 프랑스의 국립묘지에 해당한다.

시몬 베유는 1944년 17세의 나이로 나치 수용소에 끌려가 부모와 오빠를 잃은 아픔을 딛고 1974년 보건장관 자리에 올라 낙태 합법화 법안을 제출하는 등 여성 인권을 위해 힘쓴 정치인이다. 1979년 유럽의회 초대 의장을 맡아 유럽 통합에도 기여했다.

베유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 정치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해 6월 그가 숨졌을 때 마크롱 대통령이 유해를 팡테옹에 안치하기로 결정하자 의외의 결정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만큼 여성들에게는 팡테옹의 문턱이 높았다. 베유보다 앞서 팡테옹에 묻힌 여성은 4명뿐이다. 그나마 팡테옹에 묻힌 최초의 여성 소피 베르틀로는 자신의 생전 업적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다. 화학자인 남편 마르슬랭 베르틀로와의 ‘각별한 부부애’로 남편과 함께 팡테옹에 안장됐다. 남성은 76명이 팡테옹에 안치돼 있다.

지난해 탄생 150주년을 맞아 팡테옹에서 특별전이 마련됐던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는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아 팡테옹에 묻힌 유일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마리 퀴리도 사후 61년이 지난 1995년에야 남편과 함께 팡테옹에 묻힐 수 있었다. 다른 두 명의 여성은 2015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 영웅 4명을 팡테옹에 안장하면서 포함된 인물들이다. 사망 후 팡테옹에 유해가 안치되기까지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린 관례를 깨고 마크롱 대통령이 사후 1년 만에 베유의 유해를 팡테옹으로 옮겨 안치토록 결정한 것은 프랑스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최근 들어 프랑스에서는 그동안 소외됐던 ‘여성 영웅’을 부각하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침체된 프랑스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를 가동 중인 마크롱 대통령의 의도와도 맞물렸다.

프랑스는 지하철역 이름을 기억해야 할 위인의 이름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파리 지하철역 16개 노선 303개 정거장 중 여성 이름은 4명에 불과했다. 올해 3명의 여성이 추가됐다. 5월 파리 3호선 ‘유럽역’이 유럽 통합에 기여한 베유의 이름을 포함한 ‘유럽-시몬 베유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 또 2021년 개통되는 파리 외곽 지역 4호선 확장 지하철역 두 곳에 프랑스 여가수 바르바라와 대표적인 레지스탕스 뤼시 오브라크의 이름을 쓰기로 했다. 일드프랑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온라인 공모를 통해 역 이름을 결정했는데 한 달 동안 3만 명이 넘는 시민이 투표에 참여했다. 프랑스 여성 단체들의 독려로 여성들의 투표가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여성인 마리엘렌 아미아블 바뇌시 시장은 지하철역 후보 이름으로 오브라크와 함께 미국의 흑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니나 시몬을 올리는 등 후보자를 아예 여성으로 채웠다. 그는 “오늘날 여성은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베유에 대한 마크롱 대통령의 빠른 팡테옹 안장 결정 역시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서명을 적어 보낸 청원이 큰 힘을 발휘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팡테옹#프랑스#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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