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블랙리스트 관련 130명 처벌 권고… 공무원 복지부동 자초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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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27일 전현직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과 산하 공공기관 임직원 가운데 26명을 수사 의뢰, 104명을 징계하라고 문체부에 권고했다. 130명의 대상자 명단엔 중하위 실무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까지 상당수 포함됐다고 한다. 문체부는 조사위의 권고를 기초로 사실관계를 따져본 뒤 처벌의 폭과 수위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사위의 공동위원장이 문체부 장관이란 점을 감안할 때 결과가 얼마나 달라질지 알 수 없다.

진상조사위는 “고위직과 하위직 모두 포함됐으며, 대상자를 가릴 때 직급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동적으로 지시에 따른 자’도 징계 권고 대상에 올랐고, 직급으로는 사무관급이나 실무자급도 포함됐다. 하지만 장관을 비롯한 정책결정자가 지시하면 실무진은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관료문화다. 정책을 수립하고 지시한 고위직은 접어두더라도 현 정부와 노선이 달랐던 과거 정부의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실무 책임자나 실무진에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심지어 수사 의뢰까지 한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특검과 감사원, 진상조사위 등의 조사를 받은 데 이어 실무자들까지 포함된 처벌 권고가 나오자 문체부는 물론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실제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조사위가 지목한 130명에게는 이미 ‘적폐’의 딱지가 붙었다. 공무원의 신분 보장을 하는 중요한 이유는 불법이 아닌 이상 정책 수행의 책임을 묻지 않아 정책이 정권 교체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토록 하는 데 있다.

정권의 뜻에 따른 주요 정책에 참여한 것이 다음 정권에서 문책 사유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관료사회에 퍼지면 공무원들이 복지부동(伏地不動)에 빠져드는 건 당연하다. 가령 현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 삭제가 정권이 바뀐 뒤 문책 대상이 된다면 어느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수행하려 하겠나.

3월 말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가 국정교과서에 관여한 공무원의 수사 의뢰와 징계 발표 이후 관료사회가 동요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방침을 따랐을 뿐인 중하위직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런 대통령의 가이드라인도 아랑곳없이 블랙리스트 조사위는 실무 공무원 처벌을 권고한 것이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과거 정부의 정책을 수행한 공무원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공직사회가 처벌이나 감사를 두려워하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뛰도록 공직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급선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국정화 진상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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