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리스토텔레스에게 철학을 가르친 곤충 꿀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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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철학자/프랑수아 타부아요, 피에르앙리 타부아요 지음·배영란 옮김/352쪽·1만6000원·미래의창

“영리하고 정치적이며 신성한 성격을 가진 곤충.” 아리스토텔레스는 꿀벌을 이렇게 정의했다. 기원전 4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꿀벌에서 영감을 얻고자 하는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각각 양봉업자와 철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형제인 저자는 이 ‘꿀벌’이라는 키워드로 서구 사상사를 조망한다.

자연철학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 581종에 대한 연구 기록을 남겼다. 그중 인간 다음으로 가장 방대한 설명을 남긴 동물이 꿀벌이었다. 자연은 그 무엇도 헛되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에게 “완벽하게 균형 잡힌 질서”를 갖춘 꿀벌 군집은 하나의 소우주였다. 꿀벌을 이해하면 대우주의 신비가 풀릴 것이라 기대했다.

기독교가 전파되며 꿀벌은 서양사상사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예수가 신과 인간을 잇는 유일한 존재인 기독교 사상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로 여겨지는 꿀벌은 이단의 상징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꿀벌의 ‘실업’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중세 학자들이 성모 마리아의 ‘처녀 잉태’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꿀벌을 다시 끌어들였다. 참고로 19세기 초 여왕벌의 교미가 관찰되기 전까지 꿀벌은 ‘교미 없이 번식하는’ 곤충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근대 철학·사상사에서 꿀벌의 입지는 더 탄탄해졌다. 그들이 상징하는 사상의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다. 심지어 나치 독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데에도 꿀벌을 사용했다. 21세기에도 꿀벌은 생태계 균형을 강조하는 ‘수분 매개형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인용한다.

저자들은 꿀벌이 “인간이 낀 색안경에 가장 걸맞은 세계상을 그들 눈앞에 펼친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사상가들이 꿀벌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건, 혹시 꿀벌을 그들 맘대로 해석하는 견강부회는 아닐는지. 재밌는 책이지만, 어쩌면 그들은 “우리는 그냥 꿀벌인데”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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