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세관 135년 역사를 확인해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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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박물관 기획특별전 ‘시대의 관문, 인천해관’ 인기
해관-관세 역사 4부로 나눠 전시… 관세행정 변천과정 알기쉽게 설명

인천시립박물관 ‘시대의 관문, 인천해관(仁川海關)’ 기획특별전을 찾은 어린이들이 개화기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탁상시계와 저울 같은 물품을 보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인천시립박물관 ‘시대의 관문, 인천해관(仁川海關)’ 기획특별전을 찾은 어린이들이 개화기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탁상시계와 저울 같은 물품을 보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인천시립박물관이 15일까지 열고 있는 기획특별전 ‘시대의 관문, 인천해관(仁川海關)’의 호응이 좋다.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인천해관의 탄생과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수입물품에 부과하는 관세가 국가 재정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자국 산업 보호 역할을 하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해관과 관세의 역사를 4부로 나눴다. 각 부는 4계절을 주제로 했다.

1부는 ‘여름, 1876년’이다. 1876년 조선은 일본과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에 따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맺었지만 관세를 부과하지 못했다. 근대적 통상 경험이 없어 관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무역 자주권을 일본에 넘겨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뒤늦게 관세 설정을 중요 정책으로 삼고 일본에 수신사를 보내 재조정 협상을 추진했지만 군대를 동원한 일본의 무력시위에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관세 부과·징수권을 인정받게 됐다.

전시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조병호가 관세 징수의 의의와 내용을 밝혀 일본에 제안한 저서 ‘조일세의(朝日稅議)’가 전시된다.

2부는 ‘가을, 1883년’이다. 조선은 중국 독일영사관에서 근무하며 관세 업무에 밝은 묄렌도르프에게 해관 창설을 맡긴다. 1883년 경기와 충청 전라 황해 평안도를 관할하는 인천해관이 탄생했다. 당시 인천해관 사진과 통관에 필요했던 다양한 문서를 볼 수 있다. 주요 수입품이던 석유와 천일염, 수출품이던 미곡과 홍삼, 우피를 보관하던 해관 창고를 재현해 놓았다. 인천해관이 관세 징수 말고도 인천항 주변 도시계획을 주도한 사실도 알 수 있다.

3부 ‘겨울, 1907년’에서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탈당한 조선이 같은 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인천해관 업무를 장악당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조선의 국운이 다해가던 1907년 인천해관은 일본식 호칭인 인천세관으로 바뀐다. 이어 일제에 강점된 1910년 조선총독부 인천세관으로 이름을 바꾼다. 대한제국의 국제무역항이던 인천항이 일본 식민지 외항으로 전락한 것이다. 인천항 주변 정미소에서 사용하던 쌀포대, 미두(米豆) 중매점 영수증과 계산서, 곡물 검사 도구를 감상할 수 있다. 일제 수탈의 수단으로 쓰인 인천항 모습이다.

4부는 ‘봄, 1949년’이다. 일제 패망과 함께 광복을 맞으면서 인천세관이 새롭게 대한민국 주권을 행사하는 관세행정을 펼치기 시작한다. 당시 현장에서 쓰던 감시용 망원경과 무전기가 전시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무료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인천세관#인천시립박물관#인천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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