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서 “배우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문소리 보며 용기얻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6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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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 선배님보다 좀 더 빨리, 문소리 선배님처럼 되고 싶어요.”

배우 최희서(31)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막힘없고 솔직했다. 19일 서울 중구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창창한 콘페스타’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최희서는 최근 감독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배우 문소리에게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배우는 상대적으로 선택받고 기다리는 직업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이야기를 연출하고 연기하고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위치에 설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흥분됐습니다. 저도 언젠간 세상에 내놓을 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어요.” 영화 ‘킹콩을 들다’ ‘동주’ 등에 출연했던 그는 지난해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아 ‘진짜 일본인’같은 연기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최근엔 OCN 드라마 ‘미스트리스’에서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귀여운 푼수 한정원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사실 최희서는 데뷔 뒤 공백기가 길었다.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를 찍은 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간도 늘 부산하고 바빴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대학로 극장을 빌려 직접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지하철에서 정신없이 대본 연습을 하고 있는데, 신연식 영화감독(42)이 오디션을 제안하며 명함을 건네기도 했다. 그가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영화 ‘동주’(2016년)에 출연한 계기였다. 신 감독은 ‘동주’의 각본을 썼다.

“쉴 때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예요. 뭔가 하지 않으면 삶의 활력이 없어지거든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연기 영상도 찍어 올리고, 해외 제작자와 온라인 오디션도 봤어요. 프로필 사진도 하루 10개는 돌리자는 목표도 세웠죠. 결국 연락이 와서 영화도 찍었잖아요. 배우로서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지만, 나름 큰 가치가 있었어요.”

언젠가 이루고픈 ‘창작자’로서의 면모는 평소 캐릭터를 연구하는 습관을 설명할 때 살짝 드러났다. 최희서는 역할을 맡으면 일명 ‘대본 노트’라는 걸 만들어 캐릭터를 구축해나간다. 배우가 작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개입”이다.

“2012년 단편영화부터 지켜온 습관이에요. 시나리오에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려고 노력해요. 영화 ‘박열’에서 맡은 후미코는 20대 초반 여성이죠. 하지만 그의 출생부터 쭉 일종의 자서전, 어쩌면 인생 소설을 써 보는 겁니다. 캐릭터를 닮은 피카소 그림도 오려 붙이고, 어울리는 시구도 찾아 적어놓고…. 연기에 앞서 배우가 누릴 수 있는 상상력의 공간이랄까요? 그 작업이 너무 즐거워요.”

하지만 스스로 볼 때 자신은 꽤나 “불같은 성격”이란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편이에요. 여자라고 무시당하고 핍박받으면 소리를 지르면서라도 대적했을 거예요. 최근 ‘미투 운동’을 보면서도 생각이 많았습니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여성에게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 사회였던 게 아닐까요. 심각한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하다가 끝내 곪아서 터진 것이죠.”

최희서는 후미코 역으로 지난해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등 11개의 상을 휩쓸었다. 6월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트리스’에서는 한정원이란 역할로 호평 받았다. 물론 실제 성격은 푼수 같은 한정원보단 줏대 있고 능동적인 후미코에 가깝다고.

“‘동주’ ‘박열’의 이준익 감독님은 ‘세상에 의지대로 되는 건 50%도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작품 고른다고 ‘매의 눈’이 되기보단, 이런저런 역할 다 부딪혀보려고 해요. 스스로 세운 계획에만 매달리지 말고 좀더 즉흥적으로. 제가 갈 길을 넓게 지켜보려고 마음먹는 중입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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