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증거확보 중요한데… 경찰에만 맡기면 허점 체크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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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안 발표]법조계 ‘경찰에 과도한 권한’ 우려

정부가 21일 내놓은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은 1948년 경찰의 독자 수사권이 폐지된 이후 70년 만에 경찰에 1차 수사권을 다시 부여하는 것이다. 그 이후 검경 간의 수사권 조정을 위한 공론화는 김대중 정부 때 시작돼 노무현, 이명박 정부로 이어졌지만 검찰의 반발에 부딪혀 정부 합의안을 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번에 나온 정부 합의안이 검찰과 경찰이 수십 년간 권한다툼을 벌여온 해묵은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경찰이 그간 드러낸 낮은 도덕성과 수사역량 문제에 비춰 경찰의 수사 권한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경찰은 기업 비리와 금품수수 범죄 수사에 필수적인 계좌 추적 역량도 크게 부족한 상태다.

○ “경찰의 도덕적 해이 우려”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장이었던 구모 씨는 유사수신업체 대표의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브로커 이동찬 씨(46)에게서 6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최근 징역 5년이 확정됐다. 구 씨는 뇌물을 받은 다음 유사수신 혐의로 입건하라는 검사의 수사지휘도 묵살하고 처벌이 가벼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송치했다. 검찰의 수사지휘 기능이 사라지면 경찰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2008년 대구지방경찰청이 수사했던 조희팔 사건에선 조 씨에게 매수된 경찰관들이 사건을 맡아 수사를 방해한 일도 있었다. 경찰이 조 씨 회사의 전산센터를 압수수색한 당일 수사 담당자인 정모 전 경사는 조 씨 일당에게서 수표 1억 원을 받았다. 전날에는 대구경찰청 강력계장 권모 전 총경이 조 씨로부터 수표 9억 원을 받았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이 경찰에 조 씨 일당의 돈세탁 정황 자료를 건넸지만 수사를 미루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2016년 검찰의 재수사에서 모두 드러났다.

특히 검찰 내부에서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질 경우 사건 당사자가 없는 뇌물 등 인지사건 수사에서 경찰과 피의자가 결탁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한 검사는 “중요한 유죄 증거를 제외하고 무혐의 증거만 적힌 불송치결정문을 보내오면 검사가 그 기록만 보고는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 없다”며 “깜깜이 수사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 “경찰 수사역량 받쳐줄까”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발표된 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1층 로비에 놓인 포돌이 마스코트 앞을 경찰들이 지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발표된 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1층 로비에 놓인 포돌이 마스코트 앞을 경찰들이 지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경찰은 2015년 발생한 전남 여수 유흥주점 여종업원 사망사건 수사에서 여종업원에게 폭행이 가해졌다는 진술을 확보해 놓고도 2주나 있다가 해당 주점을 압수수색했다. 사건 초기 폐쇄회로(CC)TV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주점을 방문했지만 “공갈용 카메라라 녹화 기록이 없다”는 업소 측 주장을 믿고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만큼 역량을 갖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사례다.

또 최근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에서도 경찰이 초동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핵심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검사는 “사건 송치 이후 검찰이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중요 자료가 없어지고 증거인멸이 된 상황에서 얼마나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부실하게 수사하면 고소·고발 당사자가 경찰 수사에 불복하고 같은 내용을 검찰이 재수사하게 되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기존에는 검찰 수사에 불복할 경우 항고와 재항고 절차를 거치면 문제가 없었지만 검찰의 보완수사라는 절차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 학계 “조정안은 엉뚱한 개혁”

한국형사소송법학회 부회장인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정부 합의안에 대해 “왼팔을 다쳤는데 오른팔을 수술하는 격”이라며 “검찰이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를 철저히 할수록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은 검찰보다 인권 침해에 더 취약하다”며 “수사권 일부를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기는 식의 수사권 조정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허동준 hungry@donga.com·서형석 기자
#초반 증거확보#경찰#허점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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