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차 원조 벤츠… 국가정상은 자국차 홍보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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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국가정상 전용차 스토리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업무 오찬 후 함께 산책을 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자신의 전용차량인 ‘캐딜락 원’(비스트) 내부를 보여준 장면은 긴 여운을 남겼다. ‘자동차 마니아인 김 위원장을 배려한 호의’ ‘세계 최고의 방탄차를 가진 미국의 파워 과시’ ‘미국차를 세계에 홍보하기 위해 벌인 깜짝 이벤트’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 정상이 타는 전용 차량은 늘 화제의 중심이다. 자동차나 기계 마니아들이 주목하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데다 국력 등 다양한 정치적 함의도 있어서다. 특히 자동차 생산국 정상들은 전용 차량이 국가를 대표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의도적으로 자기 나라에서 생산된 차량을 타는 등 경제적 함의도 적지 않다.

○ 국가 정상 전용 차량의 명가 메르세데스벤츠

국가 정상들이 타는 차량은 ‘안전성’이 생명이다. 국가 정상이 차량을 타고 가다가 총격을 당해 사망하면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차체를 구성하는 강판이나 유리창에 방탄 처리가 돼 있다.

방탄 차량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가 원조다. 1928년 ‘뉘르부르크 460(W08)’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1933년 ‘770K’ 세단을 기본으로 한 방탄 차량을 당시 히로히토(裕仁) 일왕에게 공급했다. 1939년에는 770K 방탄 모델을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용으로 제작했다. 현재 아시아와 아프리카 주요 국가 정상들이 전용 차량으로 벤츠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지난해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참관하는 북한 김 위원장의 모습이 찍힌 사진에서 신형 벤츠 차량이 처음 포착됐다. 당시 유엔이 사치품 금수 조치를 내린 상황에서 고가의 벤츠 차량이 북한으로 유입된 경로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우선 북한이 중국회사로 위장한 업체를 통해 수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한국 국적자가 해당 차량을 주문했다는 것을 벤츠 측이 확인해줬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타고 다니는 차량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로 추정된다. 전장이 6.5m, 차량 무게만 5t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탄 기능을 갖추고 있고 폭탄에도 견딜 수 있다. 차체 구조와 외벽 사이에 특별 강철이 들어 있다. 총알을 막기 위한 특수 섬유까지 들어 있어 자동 소총과 수류탄으로도 뚫을 수 없다. 화염에도 타지 않도록 외관은 특수 방화 처리돼 있다. 별도의 산소 공급 시스템이 있어 화학가스 공격에도 견딜 수 있다.

이 차량의 가격은 대략 10억 원으로 추정된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에 따르면 이 차량과 가장 흡사한 것으로 국내에 시판 중인 모델은 2억4000만 원대의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차량을 보면 2015년 이전 모델로 보인다”며 “S클래스 모델을 바탕으로 특수 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 국가 정상은 자국(自國) 자동차 세일즈맨

트럼프 대통령이 타는 캐딜락 원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만들었다. 쉐보레의 대형 픽업트럭인 ‘코디악’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다. 구체적인 사양과 성능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도 아키히토(明仁) 일왕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모두 일본산 차를 탄다. 일왕은 도요타 센추리 리무진, 총리는 한 단계 낮은 센추리와 렉서스 LS600h L 리무진이다. 국내외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두 사람의 전용 차량을 통해 일본산 차량을 직간접적으로 홍보하려는 포석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중국산 차를 탄다. 중국제일자동차집단(FAW)이 만든 고급 자동차 ‘훙치(紅旗)’. 길이 6.5m, 무게 4.5t으로 우주선 유리 제작기술이 적용된 방탄 기능을 갖췄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독일산 차를 탄다. 특이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국가 정상들이 애용하는 벤츠 대신 아우디 ‘A8L 시큐리티’를 선택한 것. 국내외 자동차 업계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벤츠보다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아우디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하고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도 자국 자동차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국가 정상들이 롤스로이스나 재규어, 푸조, 시트로엥 등 토종 브랜드를 정책적으로 타고 있다.

○ 한국은 외제차에서 국산차로

과거 한국 대통령은 변변한 국산 자동차가 없어 미국산 차량을 많이 탔다. 이승만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캐딜락 ‘시리즈 62’를 이용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쉐보레 비스케인’과 ‘캐딜락 75’를 주로 탔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도 캐딜락을 의전차량으로 사용했다.

김대중 대통령부터 독일산 차가 등장했다. 김 대통령은 벤츠 ‘S600 리무진’, 노무현 대통령은 BMW ‘760Li 하이 시큐리티’, 이명박 대통령은 벤츠 ‘S600 풀만 가드’와 BMW ‘760Li 시큐리티’를 각각 탔다. 국산 차량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처음 등장했다. 현대자동차 ‘에쿠스 리무진’으로 15kg 정도의 고성능 폭탄이 터져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말 현대차로부터 공급받아 방탄 차량으로 개조한 ‘제네시스 EQ 900’과 벤츠 ‘마이바흐 S600 가드’를 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올해 4월 판문점 회담에 제네시스 EQ 900를 타고 갔다면 제네시스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을 것”이라며 “경호나 의전 차원에서 이유가 있었겠지만 문 대통령이 외제차를 타고 간 것이 좀 아쉽다”고 말했다.

송진흡 jinhup@donga.com·김상훈·김지영 기자
#캐딜락 원#방탄차#국가 정상 전용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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