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3선 서울시장’ 날개 단 박원순… “또 3위” 고개 숙인 안철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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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13 지방선거]7년전 ‘안철수의 양보’뒤 엇갈린 운명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당선자가 13일 밤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당선자가 13일 밤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든든한 지방정부로 뒷받침하겠다. 공정과 정의, 평화와 민주주의가 꽃피는 대한민국을 서울에서부터 시작하겠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는 13일 오후 10시 40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며 지난해 대권을 놓고 한때 경쟁을 벌인 문 대통령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번영을 언급했다. 박 당선자는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광장을 지키며 새 정부 출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선거운동 내내 “이번 지방선거는 박원순만의 선거가 아니다. 서울의 모든 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선거 초반부터 압승이 예상된 상황에서 박 당선자는 자신의 선거운동 못지않게 구청장 지원 유세에 집중했다. 지난달 15일 후보자 예비등록 이후 서울 시내 25개 구를 모두 최소 두 바퀴 이상씩 돌았다고 한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14일 오전 1시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총 25곳의 서울 구청장 가운데 최소 23곳을 휩쓸었다.

박 당선자는 두 달 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출마를 선언하면서 파란색 넥타이와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민주당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 4년 전 재선 과정에서 당명이나 로고를 잘 드러내지 않고 홀로 배낭을 메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벌인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2011년 첫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당선자는 민주당의 입당 권유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채 무소속으로 나섰다.

한 여권 인사는 “지난해 대선 출마를 접은 후 박 당선자가 본격적으로 당원들을 파고들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이 된 박 당선자의 대권 행보는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눈길을 끄는 포인트 중 하나는 박 당선자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얽히고설킨 인연이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안 후보의 전격적인 양보가 없었다면 3선도 없었다. 이번에도 자유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야권 표가 분산돼 박 당선자를 간접적으로 도운 측면이 있다. 박 당선자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올 4월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안 후보와 나는 당도, 서 있는 위치도, 가는 길도 굉장히 달라졌다. 참 애매한 관계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13일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 침울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13일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 침울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안 후보는 이번 패배로 그야말로 2011년 정치 입문 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차기 대선은 물론이고 당내 입지 자체가 흔들려 다시 한 번 깊은 정치적 잠행을 타야 할 형편이다.

안 후보는 7년 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냉정했다. 안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골목골목으로 걸어 들어가 시민들과 만났다. 지난해 대선 당시 서울에서의 득표율(22.7%)을 기반으로 다시 한 번 ‘안철수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것이었다. 안 후보는 선거 전 기자와 만나 “선거에 나서면 한국당은 매우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판을 흔들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박 당선자에게 1위를 내주더라도 3위를 크게 앞선 2위로 올라서려는 목표를 세웠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바른미래당 일각에서는 2020년 총선 공천권을 갖는 당권 도전에 안 후보가 나서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해 대선에 이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연달아 3위에 머물며 안 후보가 심각하게 정계 은퇴를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안 후보는 출구조사 발표가 난 뒤 서울 당사를 방문해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채워야 할지, 이 시대 제게 주어진 소임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겠다. 따로 말씀 드릴 기회를 갖겠다”고 말한 뒤 입을 닫았다.

김 후보는 2위를 기록하며 일단 재기의 발판은 마련하게 됐다. 안정적인 대구 지역구를 버리고 중앙당의 서울시장 출마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포스트 홍준표’를 노린 행보라는 말이 나온다. 김 후보는 평소 “나는 보수 통합론자다. 안 후보도 좋은 인재이니 한국당에 입당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보수야권 통합을 주도하겠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다.

김상운 sukim@donga.com·최고야 기자
#서울시장#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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