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사고 사망률 52.5%… 맨홀서 일할 땐 산소공급 마스크 꼭 써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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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사망 반으로 줄이자!]<中>질식사고 막는 안전 수칙 실천하기




5일 대전 유성구 하수처리장에서 한 작업자가 산소 공급용 마스크를 착용한 채 처리시설에 들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하수나 분뇨 처리장, 건설 현장 등에선 가스 농도가 갑자기 치솟아 질식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선 안전보건공단 소속 점검원이 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대전=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5일 대전 유성구 하수처리장에서 한 작업자가 산소 공급용 마스크를 착용한 채 처리시설에 들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하수나 분뇨 처리장, 건설 현장 등에선 가스 농도가 갑자기 치솟아 질식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선 안전보건공단 소속 점검원이 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대전=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삐비비빅!’

5일 대전 유성구 하수처리장에서 가스농도측정기가 요란한 경고음을 냈다. 하수에 뒤섞인 머리카락 등 찌꺼기(슬러지)가 썩으면서 새어나온 유독 물질인 황화수소 농도가 5ppm 이상이라는 뜻이다. 이영석 안전보건공단 대전지역본부 직업건강부장은 “밀폐된 공간은 황화수소 농도가 1ppm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환기하거나 송기마스크(산소를 공급하는 보호구)를 단단히 쓴 뒤 들어가야 질식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했다.

○ 작업 전 가스 측정-송기마스크 착용은 필수

이날 안전보건공단은 대전시설관리공단 환경시설본부가 하수처리장의 슬러지 인양기를 손보는 과정을 점검했다. 인양기 주변에선 계란이 썩은 듯한 황화수소 냄새가 진동했다. 황화수소 농도가 150ppm이 넘으면 후각이 마비된다. 1000ppm 이상이면 숨을 한 번만 들이마셔도 즉사한다. 이 하수처리장엔 황화수소 농도가 1500ppm 이상으로 치솟는 곳도 있다. 안전 수칙을 어기면 삽시간에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하수처리장에 들어가기 전 한 직원이 황화수소 농도가 떨어진 걸 확인한 뒤 송기마스크를 썼다. 시중에 나온 미세먼지 마스크는 아무 소용이 없다. 송기마스크로 외부의 맑은 공기를 곧장 넣어줘야 한다. 또 다른 직원은 밖에서 공기가 제대로 주입되는지 관찰하며 파트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2명 이상이 함께 움직이는 게 철칙이다. 혼자 작업하다 유독가스를 마셔 의식을 잃으면 심각한 상태에 빠질 때까지 방치될 수 있어서다.

이처럼 질식 사고의 위험이 큰 하수 및 분뇨처리시설은 전국 4000여 곳이다. 정식 시설이 아닌 맨홀 5만5000곳에서도 보수 작업이 수시로 이뤄진다. 대다수는 가스농도측정기와 송기마스크, 환풍 장치를 갖추지 못한 영세 사업장이다. 안전보건공단은 이들을 위해 해당 장비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정완순 안전보건공단 대전지역본부장은 “작업 일주일 전에 전국 27개 본부 및 지사에 신청하면 장비를 빌려주고 사용법도 알려준다”고 말했다.

○ “치사율 높은 질식, 2022년까지 절반 이하로”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목표는 전국 근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질식 사고의 사망자를 2022년까지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질식 사고가 자주 발생하진 않는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07건이 발생해 177명이 사고를 당했다. 문제는 이 중 93명(52.5%)이 숨져, 사망률이 다른 산업재해(1.2%)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이다.

하수처리장과 맨홀 다음으로 황화수소 질식 사고가 잦은 곳은 돼지농장이다. 돼지의 분뇨는 소의 것과 달리 밀폐된 공간에 보관하는데, 여기서 나온 유독가스로 매년 1, 2명이 꾸준히 희생됐다. 올해 4월에도 경남 하동군의 한 돼지농장에서 황화수소로 의식을 잃은 근로자 1명이 숨졌다. 공단은 전국 돼지농장 4500곳에도 가스농도측정기 등을 빌려주고 있다.

질식 사고는 건설 현장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겨울철에 콘크리트가 얼지 않도록 불을 피우다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진 근로자가 지난 5년간 12명이나 된다. 지난해 12월 경기 김포시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선 야자열매숯을 교체하려던 근로자 2명이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셔 숨졌다.

안전보건공단은 올해 10월부터 공사 규모가 3억∼120억 원인 건설 현장 7만 곳에서 날씨의 변화에 따른 ‘중독사고 발생 경보(KOSHA Alert)’를 운영하고 예방교육을 할 예정이다. 건설현장에서 주로 쓰는 숯 제품의 표지엔 산림청과 협의해 경고문도 붙인다.

전문가들은 현장 근로자나 하청 사업주 못지않게 원청 사업주도 질식 사고 예방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작업을 서두르라”는 원청의 압박 탓에 현장에서 안전 절차를 건너뛰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질식 사고 예방수칙을 지키지 않은 원청 사업주의 징역형 상한을 현행 1년에서 7년으로 올리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을 지난달 31일 국회에 제출하려 했지만 일정을 미뤘다. 규제심사를 맡은 외부위원 중 일부가 ‘경영계의 부담’을 이유로 반발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웹툰 ‘생활의 참견’의 김양수 작가가 질식 사고 예방을 주제로 제작한 네 컷 웹툰. 질식 사고는 자주 발생하지만 다른 산업재해보다 사망률이 40배 이상으로 높아 작업 전 안전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웹툰 ‘생활의 참견’의 김양수 작가가 질식 사고 예방을 주제로 제작한 네 컷 웹툰. 질식 사고는 자주 발생하지만 다른 산업재해보다 사망률이 40배 이상으로 높아 작업 전 안전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전보건공단 제공


산재 보상 기준 완화 Q&A

Q: 점심에 커피 한 잔 후 돌아오다 사고 나면?
A: 회사 인근이면 “산재”

11일부터 근로 현장에 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회사 인근에서 식사하고 돌아오다가 다쳐도 산업재해(산재) 보상보험에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게 된 점이다. 기존엔 ‘구내식당이나 사업주가 지정한 식당’에 다녀오다가 당한 사고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 이번에 이를 ‘휴게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는 사업장 인근 식당’으로 완화했다. 근로복지공단이 바꾼 ‘휴게(식사)시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한 업무처리 요령’의 내용을 질의응답(Q&A) 형식으로 알아봤다.

Q. 회사에 구내식당이 있지만 날씨가 더워 인근 냉면집에 가다가 발목을 다쳤다. 산재로 인정되나?


A. 인정된다. 구내식당이 있든 없든 휴게시간 내에 사업장으로 복귀가 가능한 음식점이라면 가는 길이나 오는 길에 당한 사고 모두 산재로 본다는 게 바뀐 지침의 핵심이다.

Q. 식사 후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커피숍이 있기에 차를 마시고 오다가 넘어져 다쳤는데….

A. 이때도 정해진 식사시간 안에 회사로 돌아올 수 있는 경우였다면 산재로 인정된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정도는 ‘통상적, 정형적, 관례적’인 식사시간 이용 방법으로 본다.

Q. 점심을 책상에서 김밥으로 때운 뒤 지인이 회사 근처에 왔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잠시 만나러 나갔다가 다쳤다면….

A.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식사 전후 당한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출퇴근과 마찬가지로 업무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인과의 만남은 사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사업주의 지배 및 관리하에 있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는 해석이다.

Q.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일하는 회사원이 기분 전환 삼아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점심을 먹고 오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A. 해당 음식점의 위치가 점심시간 안에 회사로 복귀할 수 있는 거리였는지가 쟁점이다. 사고를 당한 시간이 정해진 휴게시간이 지난 후였다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Q. 거래처 직원과 식사하러 회사로부터 차로 40분가량 떨어진 음식점으로 가다가 사고를 내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산재인가?

A. 개정 전 지침으로도 산재로 인정받는다. 거래처와의 회의나 간담회 등 업무와 관련된 식사를 위해 이동 중이었다면 휴게시간 안에 회사로 복귀할 수 있는지와 무관하게 업무 수행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근로자 본인의 과실 비율이 높다면 자동차보험보다 산재보험에 치료비를 청구하는 게 상대적으로 이익이다. 자동차보험은 운전자 부주의 과실 등에 따라 보상액을 깎지만 산재보험은 과실이 크든 작든 같은 급여를 준다.

대전=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산업 재해#질식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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