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말 잘 통할 것” “北 CVID수용 믿는건 어리석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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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정상회담 D-4]美-日 한반도 전문가 3인이 보는 회담 전망

《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核) 담판 결과에 따라 한반도와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 외교 안보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북아 패권 다툼에서 중국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미국, 북-미 간 화해 무드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본, 한미일 3국 공조 체제의 두 축인 미일 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로부터 북-미 회담 및 비핵화 전망을 들어봤다. 이들은 ‘싱가포르 회담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길은 멀고도 험할 것’이란 인식을 보였다. 》
 
▼ 불완전한 비핵화라도 전쟁보다 나아… 첫 합의문 나오면 그게 바로 첫 걸음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막상 만나면 말이 잘 통할 것이다. 이번에는 결국 폭넓은 합의를 하고 프로세스를 만들어서 풀어가자는 수준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족스러워할 것이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64·사진)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이렇게 전망했다. 그는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는 질문에 “불완전한 합의를 한다고 해도 전쟁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이미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 그걸 협상을 통해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에 모든 일이 다 될 것으로 보는 건 환상이다. 두 정상이 첫 합의문만 내놓을 수 있다면 그게 북한 비핵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군사적 긴장을 늦추고, 협상도 계속 해 나갈 수 있다. 싱가포르 북-미 회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는 평양의 기대치와 워싱턴의 기대치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워싱턴은 완전하면서도 빠른 비핵화를 원하지만 평양은 그걸 ‘항복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나는 워싱턴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 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준 뒤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나머지 2년 내에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 전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의 뜻대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북한이 비핵화를 끝내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비핵화에는 필요한 단계와 절차가 있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듯 말했다. 그는 “북한과 협상해 본 사람들은 북한이 절대 핵을 ‘완전하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북한도 ‘비핵화를 하겠다’고 했지, 언제 ‘완전하게 하겠다’거나 ‘빨리 하겠다’고 했느냐”고 덧붙였다.

이어 “북한은 그들만의 비핵화 타임테이블(시간표)을 갖고 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만, 북한은 ‘스스로 핵무기가 필요 없다고 판단할 때’ 핵을 포기할 것이다. 북한이 ‘우선 핵무기를 다 가져가라. 그 다음에 우리를 돌봐 달라’고 말하는 날은 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국제압력-조율-비상대책-대화채널… 조화롭게 돌아가야 北 비핵화 성공 ▼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이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실패할 경우 북한이 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점 때문이다.”

다나카 히토시(田中均·71·사진) 전 일본 외무성 심의관은 최근 일본 도쿄에서 기자와 만나 이런 역설적인 이유로 북-미 회담의 성공을 점쳤다. 그는 “1990년대 이래 북한 비핵화를 위한 많은 노력과 좌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세계의 기대감이 고조된 적은 없다. 만일 ‘이번에도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그 책임과 부담은 오롯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짊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2년 9월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으로 일하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방북과 평양선언을 이끌어내며 대북 외교사에서 북-일 양국이 가장 가까워졌던 상황을 진두지휘한 인물. 6자회담의 틀을 만든 공로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리비아식 모델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북한과 리비아의 핵개발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도 미국이 체제 보장 및 보상을 제대로 해줄지 우려하고 있다. 단계적인 보상을 통해 북한의 이러한 불안감을 조금씩 해소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북한도 먼저 구체적 행동을 보여야 한다. 최소한 모든 핵시설을 신고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해야 한다. 비핵화는 아주 긴 여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과정(긴 여정)에서 P3C가 중요하다. 국제사회의 대북압력(pressure)이 있는 가운데 관계국 간의 조율(coordination), 비상 상황에 대한 대책(contingency plan), 북한과의 대화 채널(communication channel)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미 회담 추진 과정에서 나온 이른바 ‘저팬 패싱’ 논란에 대해선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가 주도하건 결과가 일본 국익에 맞는다면 좋은 일 아닌가. 추후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미 양국 간에 국교 정상화를 향한 조짐이 보이면 일본도 북-일 국교 정상화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일본은 북한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납치 문제와 같은 주권과 관련된 문제를 (일본이) 한국이나 미국에 부탁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제재 해제’ 김정은-‘북핵 성과’ 트럼프… 더 절박한 야심이 회담 성패 가를 것 ▼

과거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75·사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아버지나 할아버지와는 다른 유형의 리더”라고 6일 평가했다.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으로 뉴욕에 머무르고 있는 허버드 전 대사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권력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망이 크고 결단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 위협을 몇 개월 만에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화해 무드로 180도 바꿔 버린 김정은의 노련한 정치술에 솔직히 놀랐다”고 덧붙였다. 허버드 전 대사는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야심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성사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풀고 지원을 받아 경제를 살리겠다는 김정은의 야심과 북한 문제를 해결해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 이 둘 중 누구의 야심이 더 절박한 것인지가 회담의 결과와 성패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버드 전 대사는 인터뷰에서 이번 싱가포르 회담에 대해 “skeptical yet hopeful(회의적이면서도 희망적)”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회담의 궁극적 성공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북-미 간 대화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이라는 의미다. 그는 “이번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성공의 기준이 비핵화(의 완전합의)라면 회담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미국은 북한에 비핵화를 들이대겠지만 북한은 애초에 회담에 나오는 목표가 비핵화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 요구를 (쉽게) 들어줄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미국 대표단도 북한의 그런 의중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미 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또는 축소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주한미군 문제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주한 미대사로 근무하면서 미국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주한미군 부대를 가장 먼저 찾는 것을 많이 봤다”며 “주한미군 문제를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트럼프#김정은#북한 cvid수용#미국 일본 한반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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