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트럼프 뒤를 조심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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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EU-캐나다 이어… 트럼프 텃밭에 보복 관세폭탄

“그들(캐나다와 멕시코)은 동맹국이지만 경제적으로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훌륭한 무역협상을 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미국이 난항을 겪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양자 협상으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꺼내 중국에 이어 동맹국과의 무역전쟁 수위를 끌어 올리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11월 미국 중간선거의 접전 지역 산업을 타깃으로 ‘핀셋 보복’에 나서면서 무역전쟁이 7월 이후 하반기 미 선거 정국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 NAFTA 재협상 대신 양자협상 선회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캐나다, 멕시코와) 개별 협상에 대해 열려 있다”며 “NAFTA든 다른 수단이든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참모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많은 나라와 타협해야 할 때 최악의 협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NAFTA 재협상을 포기하고 철강, 알루미늄 관세를 지렛대로 양자협상을 진행해 캐나다와 멕시코를 각개격파 하겠다는 의도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즉각 반발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정중하게 대응할 것이지만 밀리지도 않겠다”고 선언했고, 일데폰소 과하르도 멕시코 경제부 장관은 “(미국의) 성난 유권자와 기업들의 전화가 쏟아져 트럼프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의원들의 지역구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자국 언론에 밝혔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선거 쟁점으로 끌고 들어가겠다는 의도다. 이날 뉴멕시코 뉴저지 몬태나 미시시피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 앨라배마 캘리포니아 등 8개 주는 11월 중간선거에 나설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 들어갔다.

○ 무역전쟁, 중간선거 쟁점으로 비화

미국과 무역전쟁에 돌입한 중국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은 11월 미 중간선거의 공화당 접전지역인 플로리다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주 등의 핵심 산업을 겨냥해 보복관세를 집중 투하했다. 캐나다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외에도 치즈 위스키 요구르트 오렌지주스 등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발표했고, 멕시코도 6일부터 철강 제품, 돼지고기, 치즈, 버번위스키 등에 20∼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멕시코는 미국산 돼지고기 최대 수출시장이어서 미 아이오와주 양돈업자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당)의 지역구 위스콘신의 치즈와 요구르트,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지역구인 켄터키의 버번위스키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위기감이 커지자 미 상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인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 주도로 의회의 사전승인 없이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공화당이 지금처럼 한다면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 40석을 잃고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될 것”이라며 이민과 무역 때리기를 선거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고 공화당에 조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지만 자유무역 지지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스티브 배넌의 나쁜 조언’이라는 사설을 통해 무역전쟁 카드를 일축했다.


■ 유럽 “나토 병력 늘리자고? 차라리 러시아와 손잡겠다”


미국의 유럽산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와 이란 핵협상 파기 이후 미국과 유럽 간의 대서양 동맹 균열이 점점 더 심상치 않다. 무역 분쟁뿐만 아니라 안보 갈등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해 러시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위협에 대비해 나토가 더 많은 병력과 장비를 배치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나 나토와 유럽은 난색을 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6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매티스 장관은 나토에 ‘30-30-30-30 계획’에 합의하자고 요구할 계획이다. 나토가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해 육군 대대 30개, 공군 중대 30개, 그리고 30개 해군 전함이 비상시 30일 내에 배치를 완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계획이다. 나토가 운영 중인 1개 대대 규모가 보통 600∼1000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3만 명 이상의 육군 병력이 필요하고 비행기와 전함도 늘리라는 요구다. 이는 지난해 12월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나토와 유럽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나토는 작지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선봉 부대로 발틱 지역과 폴란드에 4개 대대를 배치하고 있다. 이를 더 늘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프랑스는 이미 아프리카에 상당한 병력을 분산 배치해 여력이 없고, 영국은 국방비가 삭감돼 기존 발틱 지역에 배치된 병력조차 줄이고 있는 추세다. 유럽연합(EU)은 나토와 별도로 지난해 12월 신속대응군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부대 배치 작업 및 헬리콥터와 함대 개발에 착수하고 있어 미국 주도의 나토군 작전 계획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미국은 또 러시아와 이란의 위협을 이유로 독일 남서쪽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우리 동맹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독일 내에서는 지나친 미군 개입에 우려를 표하는 여론이 높다. 자체적으로 중단거리 미사일 방어체계를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독일 정계에는 최근 부임한 리처드 그리넬 주독 미국대사를 추방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는 최근 미국 극우성향 온라인 매체 브라이트바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유럽 전역에 있는 다른 반체제 성향의 보수주의자들과 지도자들에게 힘을 싣고 싶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처럼 유럽-미국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유럽 내에선 오히려 러시아와 가까워지려는 분위기마저 나타난다. 독일 야당은 좌우 성향 상관없이 “8일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회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러시아를 다시 참석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회의는 러시아를 포함한 G8 회의로 진행되다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G7 회의로 바뀌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5일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같은 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방문을 반기며 “슈퍼파워를 가진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나는 유럽의 분열을 바라지 않는다”고 화답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무역전쟁#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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