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연금 주주권, ‘연금 사회주의’ 도구로 전락 안 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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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5일 “한진그룹 경영진 일가의 일탈행위 의혹이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진그룹 측에 경영관리체계 개선 등을 포함해 효과적인 대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위원회 측은 이례적으로 대한항공에 경영진과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하는 공개서한도 보냈다. 국민연금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지분을 각각 11.81%와 12.45% 보유한 2대 주주다.

위원회 측의 이번 요구는 최근 불거진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일탈행위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기업가치가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헤지펀드인 엘리엇과 같은 소액주주들이 단기 차익을 노려 과도한 배당 등을 요구할 때도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를 통한 이익 실현을 위해 반대에 나서 기업의 방패막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다 보니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위원회가 민간기업의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특히 다음 달부터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의결권 행사 같은 ‘단순 투자’를 넘어 적극적인 경영 참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참고하는 행동 강령이다. 이미 국민연금은 지난해 11월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노동이사 선출에 찬성표를 던져 정책을 뒷받침한 바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한항공 사태 개입이 자칫 민간기업에 정부 입맛에 맞는 ‘관선 이사’를 뽑고, 정부 정책을 실현하는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의 시범 사례로 악용돼선 안 될 것이다.

국민연금은 3월 말 기준 국내 주식시장에 약 131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만 267곳에 이른다. 이 기업들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재벌개혁이나 기업 지배구조 개편 같은 정치적 정책적 수단으로 사용되면 안 된다. 주주권은 오직 가입자가 2200만 명에 이르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불려주기 위한 장기 투자 수익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민연금#연금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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