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저 인간”… 무촌 부부, 무례 안돼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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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15> 부부 사이에도 예법 지켜야죠



■ 독설만 남기는 어긋난 소통… 존중받고 싶어요

“야, 이런 자리에 나올 땐 옷 좀 신경 쓰면 안 되냐?”

부부 동반 모임에 다녀오던 길. 아가씨처럼 예쁘게 꾸민 친구 부인들을 본 남편이 한 말입니다. 아기 이유식과 옷가지를 챙기다 보면 눈썹 한쪽 그릴 정신도 없는데…. 티셔츠 한 장 안 사주고 친구 부인들과 외모를 비교하니 저도 모르게 독설이 쏟아집니다. “이 인간이 돈도 쥐꼬리만큼 벌면서 바라는 것도 많네.”

부부는 어떤 혈육보다 가까워 무촌(無寸)이라죠. 하지만 너무 가까운 탓인지 남보다 더 큰 상처를 주고, 사과도 안 하게 되네요. 요새는 ‘성관계’로도 싸웁니다. “좋지도 않은 거 뭘 자꾸 하자고 보채?” 그러면 남편이 쏘아붙입니다. “그럼 나 밖에서 해결한다?”

한국이 예법을 중시하는 나라라지만, 부부 사이에선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의 관계처럼 부부 사이에도 필요한 예법이 있지 않을까요?

■ 낮춰 부르는 무례한 호칭, 갈등만 부채질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결혼이라지만 막상 부부가 된 뒤에는 크고 작은 갈등에 시달리는 이가 많다.

연애 시절엔 상상도 못했던 결혼 생활의 현실 속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은 ‘상대에게 던지는 칼날 같은 폭언’이다. 취재팀이 심층 인터뷰한 10명의 기혼자(모두 30대) 모두가 부부 갈등을 심화시키는 첫 번째 원인으로 무례한 소통방식을 꼽았다.

우선 ‘야’ ‘마누라’ ‘저 인간’ 등 상대를 낮춰 부르는 호칭이 문제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이런 호칭은 싸움을 더욱 격화시킨다. 주부 김지혜 씨(32)는 “호칭이 무례하면 뒤따라오는 말도 무례해진다는 걸 느꼈다”며 “서로 원하는 호칭을 알려주고 아무리 화가 나도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자 다툼이 줄어드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부부관계의 또 다른 ‘폭탄’은 상대방 부모나 집안에 대한 비난이다. 요즘은 배우자 집안을 흉보는 게 TV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처럼 돼 버린 시대지만 실제 부부 생활에서 이런 발언은 되돌리기 힘든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근 이혼한 이모 씨(37)는 “아내가 나의 경제력을 비난하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며 부모까지 욕하는 상황은 참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부부란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지만 막상 현실에선 가장 뒷전이 되는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결혼 20주년을 맞은 김장훈(가명·51) 씨는 일부러 매주 목요일 ‘부부타임’을 갖고 아내와 단둘이 식사나 쇼핑, 운동을 즐긴다. 이 자리엔 자녀도 낄 수 없다. 그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 서로 바쁘지만 최소한 이 시간만큼은 당신에게 집중한다는 의미”라며 “각자의 관심사를 공유하다 보면 저절로 이해가 생기고 서로 존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남편은 게임만, 아내는 인스타그램만 하는 요즘 세대가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부부간 ‘성생활 예절’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찾아줄 때 고마워해라” “부부의 섹스는 근친상간” 등의 발언은 농담이라 해도 상대방은 모욕감을 느끼는 대표적인 언어폭력이라고 말한다.

미국 킨제이연구소 출신 백혜경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부부관계를 요구하든, 거절하든 갈등의 상황을 배우자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나(I) 대화법’이 필요하다”며 “당장 서로의 욕구를 맞추기 어렵다면 ‘침대에서 ○○분 대화하기’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성적 욕구를 주장하기에 앞서 물리적 친밀도를 높이며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 예절이라는 설명이다.

김수연 sykim@donga.com·유원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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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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