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벤츠’ 역주행… 두 남매 둔 家長 참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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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영동고속道 유턴후 역주행… 양지터널서 마주오던 택시와 충돌
귀가하던 30대 회사원 숨져

30일 경기 용인시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양지터널에서 음주운전으로 역주행 충돌사고를 일으킨 벤츠 차량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제공
30일 경기 용인시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양지터널에서 음주운전으로 역주행 충돌사고를 일으킨 벤츠 차량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제공
“우짜꼬, 이놈아. 우리는 어찌 살라고 그리 갔노.”

병원에 안치된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뒤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쳤다. 며느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간신히 오열은 막았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은 막지 못했다. 울음을 꾹 참던 아버지는 두 사람을 보고 결국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날 가족들은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잃었다. 그리고 아홉 살과 여섯 살 남매는 아빠를 잃었다.

사고는 30일 0시 36분경 경기 용인시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에서 일어났다. 사고 직전 노모 씨(27)는 경기 수원시에서 술을 마신 뒤 자신의 벤츠 차량을 몰고 고속도로 4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덕평 나들목을 약 1km 앞둔 지점에서 노 씨는 갑자기 유턴해 1차로에 거꾸로 섰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벤츠 차량은 약 3분 30초간 정차한 뒤 그대로 역주행을 시작했다.

한밤중 비까지 오던 고속도로 위에서 갑자기 역주행 차량을 마주친 운전자들은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한 운전자는 “비가 와서 감속하며 2차로로 운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차량 한 대가 역주행해서 깜짝 놀랐다. 112에 신고한 뒤 너무 떨려 다음 휴게소에서 운전을 멈췄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노 씨는 약 5분간 8km를 달렸다. 시속 100km 가까운 속도였다. 결국 양지터널 안에서 조모 씨(54)가 운전하던 쏘나타 택시와 정면충돌했다. 두 차량 모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졌다. 당시 택시 뒷자리에 타고 있던 승객 김모 씨(38)가 현장에서 숨졌다. 조 씨는 중상을 입고 이국종 교수가 있는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역주행 운전자 노 씨는 경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 결과 노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76%로 만취 상태였다. 그는 경찰에서 “집으로 가려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차를 돌린다는 게 잘못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숨진 김 씨의 시신이 안치된 용인세브란스병원은 비보를 듣고 달려온 가족들의 오열로 가득 찼다. 김 씨는 SK하이닉스(경기 이천시) 직원이었다. 대학 동창인 동갑내기 아내 정모 씨(38)는 경남 창원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

용인동부경찰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사상) 등의 혐의로 노 씨를 입건했다. 경찰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노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용인=남경현 bibulus@donga.com·김정훈 / 서형석 기자
#역주행#교통사고#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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