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하정민]우리는 다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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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튜브 과학채널 AsapSCIENCE
김채린 디지털뉴스팀 인턴
김채린 디지털뉴스팀 인턴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인간의 청각 오류, 즉 ‘착청(錯聽·auditory illusion)’을 소재로 한 동영상이 세계적 화제다.

영상은 12일 미국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올라온 게시물이다. 녹음된 음성이 ‘로럴’로 들리는지 ‘얘니’로 들리는지를 묻는 질문에 ‘로럴이다’ ‘얘니다’ ‘둘 다 들린다’ ‘둘 다 아니고 완전히 다른 소리다’ 등 갖가지 의견이 난무한다.

유사품으로 장난감 캐릭터 명칭이 ‘브레인 스톰(brainstorm)’과 ‘그린 니들(green needle)’ 중 무엇인지를 구별하라는 동영상도 등장했다. 2015년 온라인 세상을 달궜던 ‘파검(파랑·검정)’ vs ‘흰금(흰색·금색)’ 드레스 대결 저리 가라다.

유튜브의 유명 과학채널 ‘최대한 빠른 과학(AsapSCIENCE)’은 이번 논쟁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우선 이 동영상을 접하기 전 ‘얘니’와 ‘로럴’ 중 무엇을 먼저 들었느냐에 따른 점화 효과(priming effect)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두 단어의 철자가 많이 다르지만 음성학적 발음은 큰 차이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또 컴퓨터·스마트폰·헤드폰 등 어떤 기기로 재생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많이 달라지고 주파수가 높은 소리에 대한 개개인의 민감도도 큰 영향을 미친단다. 특히 나이가 들면 높은 주파수 음역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므로 젊을수록 ‘얘니’, 나이가 많을수록 ‘로럴’로 들린다는 설명은 수백 번 들었어도 ‘오로지 로럴’이었던 기자에게 씁쓸함을 안겼다.

비단 청각뿐일까. 인간의 오감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알려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같은 길이의 선이지만 양 끝의 화살표가 안과 밖 중 어디로 향했느냐에 따라 바깥 화살표의 선이 더 길어 보이는 ‘뮐러리어 착시’, 특정 현상에만 주의를 집중하면 같은 시공간에 고릴라처럼 큰 물체가 지나가도 인지하지 못하는 ‘부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는 시각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신체 부위에 대해 여전히 감각을 느끼는 ‘환상사지(phantom limb)’는 촉각 오류의 대표 사례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는 것에 대한 100%의 확신은 위험하다. ‘내가 봤는데 A가 옳다’ ‘내가 들었으니 B가 맞다’는 태도는 그 자체로도 오류를 내포할 뿐 아니라 다양성과 다원주의가 중요한 현대사회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현실은 어떤가. “네 청력에 문제 있는 거 아냐? 완전히 ‘로럴(얘니)’인데?” 정도면 양반이다. “이게 얘니(로럴)라고 주장하는 넌 사문난적!”이라는 사람들만 넘친다. ‘내로남불 DNA’를 뼛속까지 장착한 정치인, 남이 나와 다른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는 종교인,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적폐’ ‘×까’로 매도하는 사람들….

“내가 너고, 네가 나”라는 말은 드라마 주인공에게나 어울린다. 나는 네가 아니고 너도 나일 수 없다. 이 작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
#착청#청각 오류#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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