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율곡 선생처럼 ‘한글 詩쓰기’로 수양의 기반 삼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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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낸 원로 철학자 윤사순 교수

시집 ‘길벗’을 낸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 동아일보DB
시집 ‘길벗’을 낸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 동아일보DB
“‘주책도 가지가지’라는 힐난이 나올 걸 생각하니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네요.”

최근 시집 ‘길벗’(유림플러스)을 낸 원로 철학자인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82)는 멋쩍은 듯 이렇게 말했다. 윤 교수는 국내 철학계의 거목이다. 그는 개별 유학자 중심이던 한국유학계의 연구를 철학적 문제 중심으로 옮기며 한 단계 수준을 격상시킨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유학에 담긴 철학적 사유를 객관적이고 정합적인 형식으로 정리하는 한편 오늘날 한국 유학이 지닌 가치를 찾아내는데 힘썼다.

그런 윤 교수가 전공도 아닌 문학으로 ‘외도’를 했으니 스스로도 꽤 망설였던 눈치다. 그러나 옛 선비들은 누구나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는 꽤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시집 역시 철학자다운 성찰이 담긴 작품이 상당수다.

‘전기 줄에 달린 물방울!/ 맑은 눈의 너/ 순하고 여리고 착할지라도/ 시냇물 강물 되어 바다로 통함/ 안다 해도/ 잠시 뒤 머문 그 자리서/ 너 하늘로 곧 증발하는 건/ 알고 있느냐/ 그거 모른다면/ 그런 거 모르는 사실마저 아는/ 나만큼 걱정은 없겠구나”(‘빗물방울’에서)

윤 교수는 지난날 성리학자들처럼 시 쓰기를 수양의 기반으로 삼고자 했다고 말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한시를 쓰고자 했지만, 운(韻)과 성조를 맞추는 게 만만치 않았다. “사실 퇴계나 율곡 선생도 한글 가사문학을 했었지요. ‘한국인인 내가 무엇 때문에 한글 시를 쓰지 않고 있나’ 생각이 들어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의 시들은 첫 시집다운 투박함을 비집고 묵직한 진솔함이 배어 나온다. 윤 교수는 “시 쓰기는 낡은 흑백의 철학 노트 갈피에 오색이 화사한 컬러 사진 한 장을 끼우는 듯한 체험이었다”며 “물론 서투르지만, 서투른 노력이나마 기울이지 않는 태도보다는 낫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근래에도 해마다 논문을 1, 2편씩 내 온 그는 지난해 시를 쓰느라 미뤄놨던 ‘수상록’ 쓰는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통일을 지향하는 철학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제 최대의 과제고 숙제입니다.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는 인본 사상이 아닐까 고민은 하지만 성과를 낼 수가 있을까요. 재주가 영 없어서….”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윤사순 교수#길벗#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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