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승옥]공정한 기회 보장은 꼴찌도 춤추게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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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사회는 남북 단일팀을 놓고 홍역을 치렀다. 정부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추진하자, 지지층인 2030세대가 저항하고 나섰다. 정부는 남북 단일팀의 의미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젊은 세대는 그 과정에 있던 ‘불공정’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2030세대는 아이스하키 단일팀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봤다. 그들이 늘 입에 올리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 자체가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꼬집고 있었다. 공정함에 대한 갈증, 그 정서를 읽지 못했던 총리는 사과했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떨어졌다.

올림픽 이후에도 갑질 등 각종 불공정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계속되고 있다. 날카로운 비수 같다. 그런데 의문도 커졌다. 불공정보다 공정이 사회적으로 이익일까, 공정하면 무엇이 좋은 것일까. 그런 사례도 확인하고 싶었다.

요즘 프로야구 한화의 상승세를 유심히 보는 게 그래서다. 한화는 올해 꼴찌 후보였다. 가뜩이나 약한 전력인데 전력 보강도 안 됐고, 부상 선수는 많았다. 꼴찌가 아닐 이유가 거의 없었다.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정반대다. 꼴찌 후보가 상위권에 올라 있다. 보통 데이터를 보면 현상(순위 상승)이 설명되는데, 한화는 좀 이상하다.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선발 투수 관련 지표에서 리그 꼴찌다. 팀 타율은 중간 정도다. 불펜 투수들의 능력 하나만 리그 정상이다. 숫자가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올해 한화는 한용덕 감독이 새로 취임했다. ‘야신’ 김성근 감독과 다른 신임 감독의 리더십이 답일 가능성이 높다. 한 감독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공정’이다. 전임 김성근 감독 시절, 한화는 선수 기용에 대한 잡음이 많았다. 감독이 선택한 선수는 과하게 중용됐고,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은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등의 뒷말이 무성했다. 그래서 누구는 혹사당했고, 누구는 주변인으로 배제됐다. 인재 풀이 협소해지고, 불협화음은 커지면서 성적은 추락했다. 감독의 권위가 너무 절대적이라 저항은 불가능했고, 선수들의 갈증은 포화 상태였다.

그래서 한 감독이 내세운 ‘공정’은 예리하게 작동했다. 그는 “모든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린다”고 했다. 그 약속이 지켜지면서 새로운 얼굴이 많아졌다. 불펜에선 좌장인 정우람은 베테랑이지만 서균, 박상원, 박주홍 등은 그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거나, 데뷔 첫 시즌을 치르고 있는 선수들이다.

베테랑 선수들의 기득권에 대해서도 공정했다.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를 2군으로 보냈다가 한참 뒤에야 복귀시켰다. 수비가 불안했고, 태도가 안일했다고 판단했다. 그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게 공정하지 않다고 봤다. 베테랑에 대한 역차별도 없었다. 세대교체라는 흐름에는 맞지 않지만, 2군에서 부활한 노장 송은범은 1군에서 중용되고 있다.

공정과 불공정에 대한 객관적인 잣대를 찾기는 어렵다. 그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할 부분이다. 한화가 상승세를 탄다는 건 합의가 적절했다는 것이고, 그걸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화의 상승세에 대해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력이 견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력으로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꼴찌 한화도 춤추게 한 공정성. 요즘 어느 조직이든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새겨야 할 핵심 키워드인 것 같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평창 올림픽#남북 단일팀#공정성#프로야구 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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