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익숙하다 보면 대학 가서도 부적응… 부모 기피까지 불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스라밸 없는 아이들, 어른 되면…

“정말 말 잘 듣는 아이였는데….”

20세 아들을 둔 A 씨(48)는 최근 서울의 한 상담센터를 찾아 울먹였다. A 씨는 이른바 ‘헬리콥터맘’이다. 그는 아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학원 ‘뺑뺑이’를 돌리며 스케줄을 관리했다. 혹여나 나쁜 길로 빠질까 주기적으로 휴대전화도 검사했다. 아들은 군말 없이 잘 따랐다. 소위 ‘SKY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아들이 A 씨를 피하기 시작했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새벽 늦게 들어와 아침 일찍 다시 나갔다. 외박도 잦아졌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짜증 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 씨는 아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A 씨 아들이 매일 혼자 학교생활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아싸(아웃사이더)’로 불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부적응과 부모 기피 같은 현상의 배경을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공부와 삶의 균형)’ 파괴에서 찾는다. 대표적인 후유증이라는 것이다. A 씨의 상담사는 “공부시간과 사생활을 통제한 부모에게 자녀가 뒤늦게 불만을 갖고 단절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라고 했다. 한세영 이화여대 아동학과 교수는 “부모가 설계한 삶에 수년간 종속되면서 아이들의 불만이 축적된다.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위험성을 항시 지닐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모의 통제가 익숙한 아이들은 성인이 됐을 때 대인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껏 누려보지 못했던 자유가 갑자기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향숙 한국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아이들의 사회성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들이 많다. 자폐에 가까울 정도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통제에 익숙한) 아이들은 대학 혹은 직장에서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아이를 완전히 통제하려다가 자칫 아이 인생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자기 시간을 주체적으로 쓸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명순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부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다. 아이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수년간 시간을 갖고 사회화를 지켜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내적, 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김자현 기자
#스라밸#통제#사생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