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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자주외교 상징, 113년만에 태극기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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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자주외교 상징, 113년만에 태극기 펄럭

조은아 기자 입력 2018-05-16 03:00수정 2018-05-16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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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워싱턴 대한제국공사관, 6년 복원 마치고 22일 재개관
을사늑약(1905년)으로 대한제국이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뒤 113년 만에 복원이 완료된 미국 워싱턴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위쪽). 옛 문서에 따라 재현된 1층 접견실(아래쪽)에 놓인 병풍, 태극기 무늬의 쿠션 등이 눈길을 끈다. 공사관 내부는 14일(현지 시간) 처음 공개됐다. 문화재청 제공

대한제국 시대 주미공사관 내부를 재현한 모습이 14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공개됐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강탈당한 지 113년 만인 22일 재개관한다. 1889년 개관 당시 주미공사 서기였던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의 증손이 직접 113년 만의 국기 게양을 맡는다. 백악관에서 1.5km 거리에 있는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청사는 지하 1층∼지상 3층, 총면적은 578.83m² 규모의 빅토리아 양식 벽돌 건물이다. 현존하는 조선왕조 및 대한제국 해외 공관 중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단독 건물로, 미국에서 우리 민족이 처음 소유한 건물로 알려져 있다. 고종 황제의 자강·자주외교의 상징으로 꼽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이 건물은 1877년 건축 당시 미국 남북전쟁 참전 군인이자 외교관이던 세스 펠프스 씨의 저택이었다. 조선이 1882년 미국과 수교하고 1889년 2월 이곳에 주미공관을 마련했다. 처음엔 임차했지만 1891년 고종 황제의 특명으로 2만5000달러를 주고 사들였다. 당시 통화 가치 기준으로 궁궐 예산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외교관들은 1893년 시카고박람회 준비 등 자주독립 외교를 펼치려 노력했다. 1897년 출범한 대한제국도 1905년 외교권을 잃을 때까지 이 공관을 사용했다. 하지만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직후 공사관은 단돈 5달러에 일제에 넘어가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1945년 광복 후 미군 휴양시설, 운수노조 사무실 등으로 쓰이던 이 건물은 1977년 미국인 젱킨스 부부의 가정집이 됐다. 한국 문화재청은 2012년 문화재보호기금법이 규정한 긴급매입비를 사용해 35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39억5000만 원)에 건물을 매입하고 고증과 복원, 리모델링을 거쳐 약 6년 만에 재현 작업을 마쳤다.

공사관은 국내외에서 발견된 19세기 말, 20세기 초 각종 문헌과 사진을 바탕으로 재현됐다. 1층에는 접견실과 식당, 2층에는 공사 집무실, 부부 침실, 공관원 집무실, 서재 등이 복원됐다. 3층은 공관원 숙소였는데 이번 리모델링으로 한미관계사 전시실로 재탄생했다. 1943년 훼손됐던 천장과 계단은 물론 복원 과정에서 뒤늦게 발굴된 하인용 계단의 흔적이 특징적이다.

한국 문화재청은 22일 오전 10시 반 공사관이 있는 로건서클 역사지구 공원에서 개관식을 연다. 김종진 문화재청장, 조윤제 주미대사, 당시 공관원이던 박정양 이상재 장봉환의 후손 등이 참석한다.

공사관은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연중무휴로 일반인을 무료로 받는다. 영어와 한국어로 안내하는 해설사가 배치된다. 관람을 위한 인터넷 사전예약(www.oldkoreanlegation.org)과 현장 접수가 가능하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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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주미공사관#월남 이상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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