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야쿠자, 가상통화로 범죄수익 2930억원 세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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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약물 판매로 번 돈, 日거래소서 비트코인으로 교환
러시아-英 등 해외거래소 5,6곳 분산
‘익명 3총사’ 모네로 등으로 바꿔
수십차례 이체 통해 ‘흔적’ 지운뒤 상거래 위장해 ‘깨끗한 돈’ 챙겨

지난달 중순 늦은 밤, 일본 도쿄(東京) 미나토(港)구의 번화가.

낡은 건물 2층의 바에서 한 중국인 남성이 30대 야쿠자 조직원에게 “별문제 없었다”며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를 건넸다. 야쿠자 조직원은 컴퓨터에 USB메모리를 꽂고 ‘ZDM’이라는 파일을 열었다. 파일명은 익명성이 높은 가상통화 제트캐시(Zcash), 대시(Dash), 모네로(Monero)의 각 머리글자를 합친 것이다.

‘ZDM’ 파일에 담긴 자료는 가상통화를 이용한 야쿠자 조직의 돈세탁 장부였다. 장부상 기록은 2016년 6월에 시작됐는데 지난달까지 세탁 자금은 총 298억5000만 엔(약 2930억 원)에 달했다. 보이스피싱과 불법약물 취급 등을 통해 얻은 범죄 수익이 대부분이었다.

같은 시간 야쿠자 조직 내에서 ‘기지’로 불리는 인근 맨션에는 20, 30대 일본인 남녀 8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실행팀’으로 불리는 엔지니어와 대학생인데 이들은 러시아 가상통화 거래소 요빗(Yobit)에 접속해 일본에서 송금한 가상통화 비트코인 등을 제트캐시, 대시, 모네로로 바꾼 뒤 여러 차례 계좌를 옮기면서 자금 출처의 흔적을 흐리게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광경은 마이니치신문이 단독으로 취재해 14일 보도한 내용이다. 지금까지 가상통화를 이용한 돈세탁 의혹은 여러 번 제기됐지만 이처럼 규모가 큰 돈세탁의 세부 정황까지 생생하게 포착된 것은 드문 일이다.

신문에 따르면 이 야쿠자 조직은 ‘금고팀’이라는 하부 조직을 통해 중국인 브로커에게 돈세탁을 의뢰했다. 브로커는 실행팀에 일본 가상통화 거래소에 복수의 계좌를 만들고 현금(엔화)을 가상통화인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일본은 본인 확인을 거쳐야 계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실행팀은 일본인 위주로 구성됐다.

이후 비트코인 등을 러시아 거래소 요빗이나 영국 히트비티시(HitBTC)처럼 본인 확인 절차 없이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해외 거래소 5, 6곳으로 분산 송금했다. 또 익명 거래가 가능하고 거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이른바 ‘가상통화 익명 3형제’로 불리는 제트캐시, 대시, 모네로로 교환하고 계좌 간 이동을 수십 번 반복했다. 그러고 나서 현지인을 통해 현금화하고 정상적인 비즈니스 거래로 위장해 일본으로 다시 송금하는 방식이다.

신문은 “사람과 장비는 모두 야쿠자 조직에서 준비한 것”이라며 “폭력단은 일찍부터 가상통화의 익명성에 주목해 왔다”는 중국인 브로커의 말을 전했다. 또 이 같은 기지가 도쿄 여러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상통화를 이용한 돈세탁이 급속히 퍼지는 것은 나라마다 규제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해 4월 자금결제법을 고쳐 계좌 개설 시 거래소의 고객 신원 확인을 의무화했다. 또 익명성이 지나치게 높은 가상통화는 취급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도 1월 말부터 가상통화 실명제를 실시 중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국가에선 여전히 거래소가 신분 확인 없이도 계좌를 만들어 준다.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 해외로 송금한 가상통화는 추적이 어렵다. 이 때문에 일본 금융당국에선 “일본 혼자 대응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신고된 가상통화를 이용한 자금세탁 의심 거래는 669건에 달한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야쿠자#가상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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