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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일 시온으로” “분노의 날 봉기”… 전운 드리운 ‘평화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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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일 시온으로” “분노의 날 봉기”… 전운 드리운 ‘평화의 도시’

박민우 특파원 입력 2018-05-14 03:00수정 2018-08-1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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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사관 14일 예루살렘 이전]‘폭풍전야’ 예루살렘 르포
‘이 vs 팔 화약고’ 긴장 고조
‘美대사관’ 안내판 옆…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만든다” 플래카드 12일 이스라엘 서예루살렘 아르노나 지역에 자리한 새 미국대사관 전경. 정문으로 향하는 진입도로에 ‘미국대사관(US Embassy)’이라고 표기한 안내 간판이 서 있다. 지금까지 텔아비브에 있던 미국대사관이 이곳으로 옮겨져 14일 새로 개관한다. 예루살렘=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텔아비브에 있던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이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14일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옮겨 개관한다. 이스라엘 측은 “예루살렘은 원래부터 우리의 수도였다”며 축하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이날을 ‘분노의 날’로 선언하고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한반도 대결 구도를 대화로 돌려놓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공약을 이행한다는 이유로 중동에 전운을 몰고 오고 있다. 》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로 불리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이 도시가 52차례 공격을 받았고, 23차례 포위됐으며, 2차례 완전히 파괴됐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점령과 탈환이 44차례나 반복됐다고 하니 사실 이 땅의 역사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미국대사관 이전 개관식을 하루 앞둔 13일 예루살렘에 다시 짙은 전운(戰雲)이 드리웠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70주년 건국기념일인 14일 텔아비브에 있던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개관키로 했다.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고 대사관 이전 계획을 밝힌 지 불과 5개월 만이다.

○ 예루살렘으로 옮겨진 미국대사관

미국은 예루살렘에 대사관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에서 4km 남짓 떨어진 아르노나 지역에 위치한 미국영사관을 대사관으로 개조했다. 기자가 찾아가 보니 미국대사관(US Embassy)이라고 적힌 안내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 그리고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만든다’ ‘트럼프는 시온(유대 땅)의 친구’ 등의 표어가 적힌 플래카드가 대사관 정문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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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앞에는 경비원 5, 6명이 삼엄한 눈초리로 경계 중이었다. 기자가 대사관 건물을 촬영하려 하자 제지했다. 건물 뒤편에 마련된 부지에는 대형 천막과 함께 수백 개의 의자가 마련돼 있었다. 미국대사관의 이전 개관식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 800명이 참석한다. 대사관 경비원은 “보안을 위해 13일 저녁부터 개관식이 열리는 14일까지 주변 도로가 통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나아가리.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으로.”

이날 미국대사관을 둘러본 몇몇 이스라엘 시민들은 기쁨에 겨워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과 함께 국가로 지정된 ‘하티크바’를 목청껏 불렀다. 남편과 함께 온 데비 라비크 씨는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사랑하고 그를 우리에게 보내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예루살렘을 찾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유대인 버코비치 조나단 씨는 “성경에는 예루살렘이 600번 이상 언급되지만 이슬람 성전인 꾸란에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며 “항상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절하는 무슬림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메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분노의 날’ 준비하는 팔레스타인

반면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팔레스타인인 밀집 구역은 ‘폭풍 전 고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여느 때처럼 가족과 함께 장을 보기 위해 다마스쿠스 게이트를 오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이드 다르위시 씨는 “우리 아랍 사람들에게 미국대사관 이전은 ‘이 땅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헤브론에서 왔다는 사헤르 후삼 자베르 씨는 “동·서 예루살렘에 상관없이 예루살렘은 아랍 땅이다. 하지만 이 땅을 밟기 위해 나는 매달 허가증을 갱신해야 한다”며 분노했다. 이메르 아와르 씨는 “예루살렘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미래가 슬플 뿐”이라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예루살렘 안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좀처럼 목소리를 낼 수 없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수도 예루살렘’ 선언 이후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특히 가자지구 분리장벽에서는 올해 3월 30일 이후 7주째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미국대사관 개관식 당일을 ‘분노의 날’로 선언하고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나섰다.

이슬람 금식 성월(聖月)인 라마단 기간(5월 15일∼6월 14일)을 앞두고 예루살렘의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예루살렘의 다마스쿠스 게이트에서 25년간 장사를 해온 마젠 살라이만 씨는 “라마단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해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은 확실하다. 테러를 포함해 모든 게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3차 인티파다 가능성은 낮아”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직접적으로 자극한 미국대사관 이전으로 3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과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에 반대해온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가 2000년 9월 군 병력을 대동하고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끄사 사원을 방문하면서 2차 인티파다가 촉발됐다. 팔레스타인은 그의 성지 방문을 의도적인 도발로 보고 분노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마음대로 예루살렘의 지위를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번 사건이 전 팔레스타인 무장봉기로 이어지기에는 분노의 동력이 약하다”며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지난해 12월 ‘수도 예루살렘’ 선언으로 이미 힘이 빠진 데다 이스라엘이 아닌 미국과 싸워야 하는 애매한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인티파다가 발발한다고 해도 그 파급효과는 과거에 비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이전처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지 못할 것”이라며 “당장 이란과의 역내 헤게모니 싸움이 중요한 사우디에 예루살렘 이슈는 뒷전인 상황이고, 터키 역시 조기 총선이 가장 다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오랜 내분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

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인 교수는 “2010년 12월 한 청년의 분신이 아랍을 뒤집어 놓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가 느닷없이 찾아온 ‘아랍의 봄’에 모두가 경악했다”며 “분노의 확산성은 누구도 예측하기 쉽지 않기에 응축된 불만이 순간적으로 솟구치면 저항이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루살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미국 대사관#예루살렘 이전#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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