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네이버의 출구’만 내놓은 한성숙 대표의 기자회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용석 산업1부 차장
김용석 산업1부 차장
1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회의(I/O)에 갔다가 마주친 장면에 겁이 덜컥 났다. 구글은 인공지능(AI)이 사진을 알아서 수정해주는 서비스를 소개했다. 아빠가 관중석에 앉아 야구 경기에 나선 아들 사진을 찍었다. 타석에 선 아들을 관중석에서 찍다 보니 철망이 앞을 가렸다.

이때 AI가 자동으로 철망 이미지를 지운 뒤 가려졌던 아들 모습을 가상 이미지로 복원했다. 사진에선 철망이 완전히 사라졌다. 아름답게 포장된 이 기술에 겁이 난 이유는 AI가 가치를 판단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가리는 철망은 알아서 지워도 되는, 나쁜 이미지로 판단했다. 좋은 이미지인 아들의 모습은 새로 만들었다. ‘나쁜 진짜’는 버리고 ‘좋은 가짜’를 만든 셈이다. 편하자고 시작한 것이 누적되면 우리는 ‘좋은 가짜’로 가득한 세상에 살게 될 수도 있다.

미래 사회를 그린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엔 이렇게 전개된 미래의 암울한 면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어린 딸의 안전이 걱정된 엄마는 딸의 머리에 칩을 심어 뇌신경으로 전달되는 시각과 감정 데이터를 태블릿 PC로 전송받는 서비스에 가입한다. 사나운 개를 보고 딸이 두려움을 느끼자 엄마는 딸의 시각 데이터를 편집한다. 이후로 딸의 눈엔 사나운 개나 친구가 보여준 포르노 영화가 모자이크 처리된 상태로 보인다. 두 사람의 인생은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정보기술(IT)은 점점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로 이런 현상은 강화된다. 여기에 AI의 폭발적 발전이 더해지면 우리 감각과 가치 판단의 상당 부분이 기계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기술 플랫폼 사업자의 윤리가 더 중요해지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9일 네이버 한성숙 대표가 네이버 뉴스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며 연 기자간담회에선 윤리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 한 대표는 “우리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뉴스 편집을 버리고 공간과 기술만 제공하는 (기술 플랫폼) 역할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뉴스 편집은 AI에 넘기고, 댓글 편집은 언론사에 주겠다는 선언만으로 포털 뉴스 논란을 벗어났다고 생각한다면 무책임하거나 뻔뻔한 일이다.

AI가 편집한 뉴스는 ‘책임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예컨대 상당수 뉴스 소비자는 불법 체류자에게 적대적이거나 관심이 없다. 그런 성향을 AI가 인식해 그들을 긍정적으로 다룬 뉴스를 편집에서 제외할 수 있다. 소비자의 성향을 AI가 분석해 만든 편집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전적으로 소비자 자신만의 책임인가? 데이터 과학자인 캐시 오닐은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모형에도 개발자의 목표와 이념이 반영된다”며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언론사들이 선택하라”는 아웃링크에 대한 언급을 보면 무책임보다 뻔뻔함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언론 시장엔 이미 네이버 없이 자력갱생이 어려운 소규모 언론사로 가득하다. 이들 상당수가 아웃링크를 택하지 못한다는 걸 네이버는 알고 있다. 홀로 아웃링크를 선택하면 언론 시장도 바꾸지 못한 채 경쟁에서 밀려날 뿐이다. 댓글 운영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가두리’ 안 경쟁구도를 빤히 아는 네이버가 던진 제안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현재 구조를 유지하되 책임만 남에게 넘기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네이버가 대한민국의 뉴스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그런 구조가 여론과 언론 시장을 왜곡한 것도 현실이다. 9일 네이버는 이런 현실 속에서 ‘네이버의 출구’만 내놓았다.
 
김용석 산업1부 차장 yong@donga.com
#정보기술#it#ai#네이버#한성숙 대표#네이버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