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휴일요? 미혼들만 좋을 텐데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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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누군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찾아뵙고 누군가는 만날 수 없는 부모님을 한없이 그리워합니다.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어버이날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네가 가장 큰 선물”

“건설회사에서 해외 파견 업무를 맡아 작년 7월에 남미 파나마로 출국했어요. 10개월가량의 근무를 마치고 5일 귀국했습니다. 공항 면세점에서 어머니를 위해 가방을, 아버지를 위해 면도기와 고급 양주를 구매했어요.한국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저를 발견하시곤 와락 안으시더라고요. 제가 귀국한 게 부모님껜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한 달쯤 뒤 쿠웨이트로 파견을 가는데, 내년 어버이날도 한국에서 맞이하고 싶어요.”―곽민제 씨(26·건설업 종사)

“매월 첫째 주 수요일에 어르신들께 무료 점심을 제공합니다. 근처 홀몸노인 분들께 따듯한 밥 한 끼 챙겨드리고 싶어 2014년 9월부터 행사를 시작했죠. 인천고 동창회와 거래처 직원이 돈을 보태고 가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매달 1만 원씩 냅니다. 어르신들을 대접하기 위해 미지근한 물과 앉기 편한 의자를 준비하죠. 120여 분이 오시는데 제 손을 잡고 ‘고맙다’고 하시면 참 보람차요. 앞으로도 매달 어버이날처럼 어르신들을 챙겨드리고 싶습니다.”

―양동섭 씨(52·인천 ‘정가네 손두부집’ 운영)

“지난달 ‘어버이날 효도 여행’으로 큰아들 부부와 함께 3박 4일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자식들이 내게 잘해주니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대구에서 한의사 하시던 아버지 덕에 부유하게 자랐어요. 닭백숙 해주시고 예쁜 미제 원피스도 맞춰주셨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해드린 게 없다는 죄송한 마음만 잔뜩 드네요.”

―이상화 씨(83·서울 종로구)

“어버이날과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가까워 한꺼번에 챙겨드려요. 우선 두 분이 데이트하시도록 제 용돈 모아 영화관람권을 사드려요. 부모님이 나가신 동안 초등학교 6학년인 여동생과 함께 집을 꾸미죠. 풍선 붙이고 색종이 오려 ‘부모님 사랑해요’라는 글자를 만드는 식이에요. 물론 저와 동생이 뒷정리를 안 해 혼난 적도 있답니다(웃음).”―이지우 양(17·순천여고 1학년)

어버이날을 명절로?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한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어요. 제 주변만 봐도 ‘며느리’인 지인들만 걱정하더라고요. 미혼인 친구들은 ‘여행 가야지’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도 왕복 4시간 거리인 시어른 댁에 한 달에 두 번은 방문해야 할 처지예요. 가뜩이나 명절 챙기랴 기념일 챙기랴 바쁜데, 어버이날까지 공휴일이 돼버린다고요? 매년 논의가 나올 텐데 저는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 결사반대입니다.”―임모 씨(30대 초반·회사원)

“어버이날이라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됩니다. 저는 오히려 5월 초에 며느리 생일이 있어 생일잔치를 준비했어요. 1인당 4만 원 하는 갈비집을 예약해놨죠. 절대 ‘어버이날에 와라’ ‘더 있다 가라’고 말 안 합니다. 며느리도 친정에 가야 하잖아요. 시어른만 우선하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죠. 명절에도 며느리에게만 용돈을 줍니다. ‘우리 아들과 살아주느라 고생한다’고 하면서요. 나부터 잘해야 자식들도 진정으로 부모를 위하지 않겠어요? 덕분에 저는 종로구청장 상인 ‘장한 어머니상’도 받았어요.”

―최병임 씨(77·운니경로당 회장)

“매년 어버이날 경북 경산에 있는 장모님 댁을 방문합니다. 오히려 아내가 ‘12월 엄마 생신 때 가고, 2월 설에 갔는데 또 가느냐’라며 잔소리하죠. 장모님도 전화로는 ‘일 하느라 힘든데 오지 마라. 기름값 아깝게 뭣 하러 오냐’고 하시죠. 막상 찾아뵈면 장모님도 아내도 서로 반가워해요. 주로 국내 출장을 다니는데 항상 장모님 선물을 챙겨 옵니다. 울진, 동해, 삼척 쪽에 가면 싱싱한 해산물을 보내드리죠.”―김덕수 씨(55·회사원)

“많은 분이 일하는 것보다 쉬는 걸 좋아할 거예요. 그런데 왜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을 반대할까요? 반대하는 대다수가 며느리입니다. ‘딸’이 아닌 ‘며느리’ 말이죠. 그간 누군가에게 책임과 부담만 부과되는 가족 관계가 아니었는지 성찰해봐야 합니다. 이번 논의가 건강한 가족 관계 형성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실장

쉴 수 없는 ‘공휴일’

“‘법정공휴일’이지만 쉬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는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버리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걱정합니다. 그렇다고 공휴일에 어린이집이 문을 열 수도 없고요. 공휴일이 지켜지는 ‘노동환경 개선’ 논의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요”―김한나 씨(26·중앙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은 정말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저희는 공휴일 상관없이 근무를 하니까요. 그저 근무를 쉬는 날에 회식 같은 일로 불러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이모 씨(26·간호사)

“5년 안으로 모든 민간 기업이 ‘법정공휴일’을 ‘유급휴무’로 챙겨줘야 합니다. 가뜩이나 5월에 공휴일이 많아 부담이 큰데 어버이날까지 법정공휴일이 되면 걱정이 늘어나죠.”―이모 씨(50대 초반·소규모 식품기업 운영)

뵙고 싶어도 갈 수 없어요

“중국에선 어머니의날은 ‘모친제’로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아버지의날은 ‘부친제’로 6월 셋째 주 일요일에 챙깁니다.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명절 음식인 ‘자오쯔(餃子)’를 먹기도 합니다. 저는 부모님께 손편지를 써드려요. 작년엔 아버지께서 편지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평소 부녀 사이에 대화가 없어서인지 더욱 감동받으셨죠. 올해는 영상 통화로 그리움을 달랠 생각이에요.”

―후이신 씨(23·중국 베이징시)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뒤 두 딸을 낳아 알콩달콩 살고 있어요. 그래도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부모님이 더욱 보고 싶어지죠. 베트남의 어버이날은 음력 7월 15일로 ‘부란절’이라고 부릅니다. 절에서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빌고 부모님께 장미를 선물하죠.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면 빨간 장미를, 한 분만 계시면 분홍 장미를 드립니다. 모두 돌아가셨으면 하얀 장미로 제사를 드려요. 올해는 제가 가지 못하지만 페이스북으로 영상 통화를 하고 용돈도 보내 드리려고 해요.”

―엉웬티로안 씨(34·베트남 하이퐁시)

“제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50리 떨어진 ‘신상’이라는 곳입니다. 1947년, 제가 14세일 적에 남으로 넘어왔어요. 당시 아버지는 먼저 남으로 내려와 계셨고 저는 매일 밤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었습니다. 그리움의 세월을 보내다 1994년 12월 중국에서 남동생을 만났어요. 그때 아버지는 노쇠하셔서 함께 가지 못하고 동생과 통화만 했죠. 남동생은 엉엉 울기만 했어요. 동생이 제게 쓴 편지에는 ‘어머님이 1967년 뇌출혈로 돌아가시기 전, 형님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눈감으셨다’고 적혀 있대요. 제 어머니는 굶주린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어요. 나의 어머니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이셨죠. 이산가족들이 서로의 생사를 알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랍니다.”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회 대표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김수현 인턴기자 성균관대 사회학과 4학년
#어버이날#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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