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동량 늘어나고 있지만… 수익은 대부분 외국계 기업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해외자본에 잠식당한 부산신항 르포

부산신항 제4부두에 설치된 안벽크레인이 지난달 19일 현대상선의 6800TEU급 ‘현대부산호’가 싣고 온 컨테이너박스를 지상으로 옮기고 있다. 부산=변종국 기자 bjk@donga.com
부산신항 제4부두에 설치된 안벽크레인이 지난달 19일 현대상선의 6800TEU급 ‘현대부산호’가 싣고 온 컨테이너박스를 지상으로 옮기고 있다. 부산=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지난달 19일 부산신항 현대부산신항만(제4부두, HPNT). ‘HYUNDAI’라는 글자가 적힌 6800TEU(1TEU는 길이 6m짜리 컨테이너 1개)급 현대부산호가 정박해 있었다. 항만 구조물인 안벽에 세워진 크레인이 컨테이너박스를 쉴 새 없이 지상으로 나르고 있었다. 높이가 약 50m나 되는 크레인에 올랐다. 바닷바람이 강해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옮길 때 발생하는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무서웠지만 한눈에 들어온 부산신항의 규모는 놀라웠다.

○ 부산신항 물동량 증가…해외 운영사만 웃는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부산항의 올해 1분기 컨테이너 물동량은 509만7000TEU다.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4.1% 늘어난 수치다. 올해 2월 물동량(165만8000TEU)만 놓고 보면 세계 5위 수준이다.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부산항 컨테이너 전용 부두를 운영하는 회사들의 매출 총합계도 지난해 처음 1조 원을 넘어섰다.

부산신항에는 총 5개의 부두가 있고 부두를 운영하는 각각의 운영사가 따로 있다. 부두는 일종의 터미널인데, 선박이 도착하면 크레인이 컨테이너박스를 지상 야적장으로 옮기거나 트럭 등에 실어 보낸다. 이 과정에서 운영사들은 컨테이너 하역료 등을 받아 수입을 올린다. 물동량이 늘면 수입도 늘어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평균 하역료가 컨테이너박스 1개당 약 5만 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 해운업계는 물동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웃지 못하고 있다. 한국 해운업체가 운영하고 있는 터미널이 없기 때문이다.

2015년까지만 하더라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부산신항 5개 터미널 중 2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운업계가 2015년부터 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5개 터미널 중 ㈜한진이 운영하는 3부두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계 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다. 3부두도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외국계로 넘어갈 뻔했지만 물류회사인 한진이 지분을 인수해 운영권을 유지했다. 4부두를 운영하던 현대상선은 2016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지분 40%+1주를 싱가포르 회사인 PSA에 800억 원에 매각했다. 크레인과 컨테이너 기기까지도 팔아 버렸다. 현재 현대상선 지분 10%가 있지만 터미널 운영은 PSA가 하고 있다. 운영권이 PSA로 넘어가면서 현대상선에서 근무하던 직원들도 PSA로 소속을 옮겼다. 현재 현대상선은 제4부두의 지분을 다시 사들여 50%로 늘리기 위해 PSA와 협상 중이다.

○ “해운업 재건, 항만 인프라도 복원해야”

부산신항의 물동량 증가에도 한국 해운업계가 웃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부산항에서만 2000만 개가 넘는 컨테이너가 처리됐다. 이 중 약 1327만 개가 외국 선사가 처리한 물동량이다. 국적 선사가 처리한 물동량은 약 720만 개 수준이었다. 한진해운 매각 후 약 100만 개가 외국 선사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부산항 물동량의 약 10%를 차지했는데 이 공백을 나머지 국적 선사가 못 채웠기 때문”이라며 “국적 선사가 보유한 선박 규모가 워낙 부족해서 한진해운이 처리하던 물량을 눈뜨고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지난달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신규 선박 발주를 위해 금융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약 50만 TEU 규모 수준인 국적 선사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을 크게 늘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가 해운업 대책에서 선복량을 늘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항만 터미널 확보 등 인프라 복원에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해운 강국으로 꼽히는 싱가포르와 두바이, 상하이 등은 공공지분이 100%인 터미널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해외 터미널 운영사 의존도가 높으면 국적 선사의 시급한 하역작업이 외면당할 가능성도 있다. 부산신항 관계자는 “우리나라 해운업체들이 우리나라 항만을 쓰면서 외국 운영사들에 돈을 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항만 인프라 투자도 돈이 되는 사업이니 국내 터미널 지분도 챙기고, 해외 터미널을 인수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변종국 기자 bjk@donga.com
#부산신항#물동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