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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광영]경찰관의 꽃이자 늪… 서울경찰청장이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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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광영]경찰관의 꽃이자 늪… 서울경찰청장이란 자리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입력 2018-05-03 03:00수정 2018-05-0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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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평소 듬성듬성하던 서울지방경찰청 10층 기자실이 그날따라 빼곡했다.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달 16일이었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이 기자들과 마주 앉았다.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초점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의 연루 여부다. 이 청장의 입에 국민과 정치권의 시선이 쏠렸다.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조직의 ‘넘버 2’다. 전국 경찰관 12만 명 중 약 4만 명을 지휘한다. 수도권 집중도가 높다 보니 굵직굵직한 정치 사회적 갈등이 사건화할 때마다 직접 지휘봉을 잡는다. 경찰청장(치안총감)보다 계급이 하나 아래인 치안정감이지만 일본은 도쿄 경시청장이 최고 계급인 경시총감이다.

영예로운 자리이지만 실상은 곳곳이 늪이나 다름없다. ‘뜨거운 감자’를 늘 떠안고 있어 총대 멜 일이 겹겹이 쌓이기 마련이다. 2000년 이후 임명된 서울경찰청장 21명 중 단 4명만 경찰청장이 됐다. 허준영 어청수 조현오 강신명 전 청장뿐이다. 나머지 17명 중 상당수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물러났다. 김석기 전 서울청장은 경찰청장 내정 상태에서 용산 참사의 책임을 지고 낙마했다. 김용판 전 청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축소 은폐 의혹으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구은수 전 청장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책임자로 지목돼 금고 3년을 구형받고 선고를 기다린다.

서울경찰청장은 안팎으로 포위돼 있다. 유일한 상관인 경찰청장과는 견제 관계에 있다. ‘넘버 1’이 비켜줘야 ‘넘버 2’가 올라갈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경찰청장으로선 힘 있는 2인자의 동태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경찰청이 직접 맡기 예민한 사건은 서울경찰청으로 내려 보내는 경우도 많다. 밖으로는 정치권과 여론의 입김에 취약하다. 수도 치안을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에 비해 직급이 상대적으로 낮다. 장관, 차관보다 아래인 차관보급(1급)이다. 그만큼 흔들기가 수월하다. 동물적인 정무감각 없이는 사면초가에 놓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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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주민 청장의 간담회는 중대한 시험대였다. 대통령 측근의 악재를 봉합하고 싶은 청와대, 지방선거에 유리한 돌파구를 찾으려는 야당, 수사권 조정을 앞둔 검경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삼각 교차’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대부분 드루킹이 문자를 보냈고, 김 의원은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의례적인 감사 표시만 몇 번 했습니다.”

그날 이 청장의 발언은 이틀 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김 의원은 ‘드루킹’에게 기사 인터넷접속주소(URL)와 함께 ‘홍보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수사 최고책임자가 김 의원을 두둔한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이 청장은 간담회 나흘 뒤 수척해진 얼굴로 기자실을 찾아왔다. 그는 “조사 내용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이 청장이 김 의원을 감싸주려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며칠 뒤 뻔히 들통 날 거짓말을 할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찰은 김 의원을 4일 소환조사하기로 하는 등 수사는 예정된 경로로 가고 있다.

그날의 실언으로 이 청장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간담회 전까지만 해도 그는 차기 경찰청장 ‘1순위’로 거론됐다. 현 경찰청장이 6월 퇴임이라 한두 달만 무사히 넘기면 ‘노마크 찬스’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힘겨루기의 한복판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엄중히 자각하지 못한 대가를 그는 톡톡히 치르게 됐다. 그에겐 기회가 곧 위기였다.

개인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어도 서울경찰청장으로선 감내해야 할 책임이다. 이 청장의 뼈아픈 실수는 잊기 쉬운 단순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누구든 화려한 요직을 선망하지만, 감투는 높을수록 무거워진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서울경찰청장#드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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