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김소현]꽃은 위로의 힘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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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뮤지컬 배우
김소현 뮤지컬 배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항상 화려할 것만 같은 뮤지컬 배우의 삶. 하지만 무대가 끝나고 나면 마치 이 노래 가사처럼, 외로움과 허망함이 밀려올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바로 꽃이다. 텅 빈 마음을 안고 공연장을 나설 때, 팬들이 건네는 향기로운 꽃다발. 집으로 돌아와 한 아름의 꽃들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안식과 치유의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이렇게 꽃을 좋아하다 보니 이제는 꽃의 종류, 의미 등 다양한 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얼마 전에는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영산홍이 너무 아름다워 꽃말을 검색해보다가 우연히 연산군이 좋아하던 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더 재밌는 점은 연산군이 유명한 꽃 애호가였고, 때로는 지친 신하들에게 꽃을 선물할 정도로 낭만적인 구석도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폭군으로 기억되는 그이지만 일상의 고단함과 우울함을 달랠 때 꽃이 제격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꽃은 여전히 아름답다. 변치 않는 꽃의 향기처럼 꽃이 우리에게 주는 정서적인 기쁨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을 전하는 소통의 매개체로서의 역할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바쁜 삶 속에서 우리는 꽃을 바라볼 여유를 점점 잃어가고, 꽃이 주는 진정한 가치를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언젠가부터 꽃은 쓰지도, 먹지도 못하는 ‘사치스러운 선물’로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늘 꽃을 가까이하는 나는 꽃만이 주는 그 기쁨을 안다. 꽃은 사람의 마음을 채운다. 고마움, 사랑, 위로처럼 한 송이의 꽃에 담아 건네는 마음은 어떤 물건이나 말보다도 더 깊이 있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몇 년 전 첫아이를 낳고 ‘엘리자벳’이란 작품으로 뮤지컬 무대에 복귀하던 때 데뷔 때보다도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렸다. 그때 나에게 힘을 주었던 것은 바로 사랑하는 남편이 보내온 꽃이었다. 그 꽃에는 남편의 사랑과 격려, 위로와 응원이 담겨 있었다. 향긋한 꽃내음에 긴장을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었다. 이렇듯 꽃은 우리의 일상을 특별하고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것이 바로 꽃이 가진 힘이자, 우리가 잠시 잊어버렸던 진정한 꽃의 가치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거나 힘들 때, 잠시 시선을 돌려 꽃을 바라보자. 아름답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꽃이 몸과 마음에 힐링을 가져다줄 것이다. 어느덧 꽃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때가 됐다. 강산 지천에 피어난 봄꽃이 마음을 살랑이는 계절이다. 평소 마음 가는 이에게 꽃과 그 향기를 담아 전하면, 활짝 핀 꽃처럼 밝은 웃음이 돌아오리라 생각한다. 혹 그냥 주기가 쑥스럽다면 좋은 핑곗거리도 있다. 길가에 봄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 나도 모르게 꽃가게를 다녀왔다고. 아무 이유 없이 당신이 생각났다고 말이다. 혹여 꽃 선물이 부담스럽다면 나에게 주는 셀프 꽃 선물도 좋다. 일상에 지친 내게 조용히 위로를 전하며, 오늘도 수고했다고 말이다.
 
김소현 뮤지컬 배우
#꽃#안식#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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