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소영]모든 것은 상호 연관되어 있을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연결성 전제한 융합연구는 정부 R&D사업 20% 육박하나
정량적 평가로 연구자 부담 커
융합연구 제대로 지원하려면 엉킨 실타래 푸는 인내심 필요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모든 것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이 표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하여 헤겔, 마르크스 등 사상가들의 저술만이 아니라 불교, 도교 등 여러 종교 경전에도 나온다. 모든 것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표현으로 대부분 위대한 저작이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거대하고 다른 하나는 미약하다. 거대한 의미란 학벌과 소득처럼 우리가 흔히 연관지을 수 있는 몇 개가 아니라 진짜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에 관계된다는 생태학의 제1법칙이나 중국 베이징의 나비가 미국 뉴욕에 폭풍을 일으킨다는 비유로 유명한 카오스 이론, 최근의 네트워크 이론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반면 미약한 의미란 모든 것이 그냥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한 인과관계나 선후관계로 깔끔히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래저래 이어지고 엉켜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래 과학기술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화두인 융합도 ‘모든 것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2008년 ‘국가 융합기술 발전 기본계획’ 수립을 필두로 정부 차원에서 융합 연구개발을 추진한 지 10년이 된다.

다학제(multidisciplinary), 간학제(interdisciplinary), 초학제(transdisciplinary) 등 융합의 정도와 범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나 학문적 경계를 뛰어넘는 연구자들의 융합은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으로 칭송된다.

그럼에도 연구 현장에서 융합연구에 대한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현재 정부 연구개발(R&D) 사업 중 융합연구가 20%에 육박하나 R&D 기획과 수행, 평가체계는 융합연구의 특성을 잘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융합연구는 어느 한 분야에 오롯이 분류되기 어려워 결과물을 확산할 수 있는 저널도 매우 제한적인 현실에서 논문·특허라는 정량적 평가는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연구자 입장에서는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기 분야 발전도 따라가기 바쁜 상황에 융합연구 한답시고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사이 어정쩡한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만다.

융합연구 지원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지만 정책적 변화를 모색하기에 앞서 융합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융합의 무한한 가능성과 실제 융합연구자들의 회의감 사이의 괴리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니 뭐든지 융합하면 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이는 융합연구의 거대한 의미에만 주목하는 아마추어리즘이다.

제대로 된 융합연구를 위해서는 융합연구의 미약한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것이 그저 연결만 되어 있을 뿐이니 융합연구로 대박을 기대하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다. 이래저래 엉킨 실타래를 상상해보자. 한쪽만 엉켜 있으면 살살 풀어내면 되지만 모든 게 엉켜 있다면 어느 한쪽 제대로 풀기가 얼마나 힘들겠나.

그래서 정말 필요한 지원은 연구자들이 함께 엉킨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인내심이다. 그리고 그 인내심은 연구비 지원 부처나 담당자의 막연한 선의가 아니라, 융합연구 과정에 숨겨진 각종 시간적 금전적 인지적 비용에 관한 치밀한 분석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가령 혼자 하면 논문 하나는 금방 쓸 테지만 여럿이 모이면 각자 역할을 분담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들 것이다. 게다가 여러 기관이 참여한다면 연구 관리의 방식 차이에 따른 행정 비용이 부가될 것이다.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용어를 공유하는 데에도 인지적 노력이 만만치 않게 들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상호 연관되어 있어 융합연구로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것이 상호 연관되어 있을 뿐인데도, 그 온갖 비용에도 불구하고 융합연구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카오스 이론#네트워크 이론#융합연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