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으로 만족 주는 아내”…유치원 가정통신문 ‘황당’

  • 동아닷컴
  • 입력 2018년 4월 17일 16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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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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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성적으로 만족을 주는 아내
②취미활동을 함께 하는 아내
③깨끗하고 매력적인 아내
④내조·집안 살림을 잘하는 아내
⑤감사와 감탄을 자주해주는 아내
⑥혼자 있을 시간을 주는 아내


최근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6가지 문구는 경기도의 한 유치원 가정통신문 내용 중 일부다.

지난 9일 한 트위터 이용자는 해당 가정통신문을 사진을 찍어 올리며 "친척 동생이 유치원에서 부부의 날이라고 받아온 가정통신문 내용이다. 성차별적이고 성희롱적인 내용이 적혀있다. 유치원 통신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은 17일 오후 4시 기준 3만 건 이상 리트윗 됐고, 3263건의 좋아요를 받았다.

이를 본 트위터 이용자들은 "통신문 내용이 너무 저질스럽고 구시대적이라고 느낀다", "남자가 봐도 경악스럽다", "요즘 시대에...", "내조와 집안 살림도 어이없다. 언제까지 아내만 집안 살림을 할 건지 의문스럽다", "충격적이다", "어이가 없다. 요즘 유치원생들 한글 읽을 수 있을 텐데. 아이들이 읽고 뜻을 부모에게 물을 수도 있고", "유치원 가정통신문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내만 성적인 만족감을 주고, 내조·살림을 잘해야 한다는 문구는 구시대적인 관념이라고 비판했다.

다음 커뮤니티인 '미즈넷'에도 이 유치원 학부모로 추정되는 누리꾼들이 "우리 아이들이 왜곡된 젠더 의식을 갖고 있는 교육 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것이 끔찍하다"라며 "유치원은 이 일을 해명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동아닷컴이 해당 가정통신문과 편지지를 입수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아빠를 위한 이벤트 관련 설명이 담겨 있었다.

가정통신문에는 "아버님(남편) 회사로 우리아이의 소중한 모습이 담긴 탁상달력과 사랑스러운 아내의 편지를 담아 보내려고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와 함께 아내가 남편에게 쓸 편지지가 첨부됐고 편지지 하단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원하는 6가지'와 '자기야! 이런 지혜로운 아내가 될게요'라는 글이 첨부됐다.

이 가정통신문을 받은 학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해당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 A 씨는 17일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받자마자 이거를 보내 준 취지가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받자마자 황당했다. 저희 부부가 맞벌이라 어머니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를 봐주고 계시는데 다른 학부모들도 이 통신문을 보고 '이해가 안 간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 학부모들 중 맞벌이 부부가 많다"라고 전했다.

이어 "특히 '자기야 이런 지혜로운 아내가 될게요'라는 문구는 모두의 와이프들이 그렇게 해야 될 것처럼, 마치 나의 생각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라며 "남편과 주변 남자들에게도 보여줬는데 다들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또 "제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봉투 밖에 있었다. 혹시 아이가 이 글을 읽었을까봐 걱정됐었다"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해당 통신문을 받은 학부모들은 유치원에 항의했고, 유치원 측은 학부모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행복한 부부의 모습이 자녀에게 가장 큰 행복이라는 좋은 취지로 이벤트를 진행했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해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속상하고 불편하게 해 드린 점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도 좋은 취지로 이해해주시려고 노력해 주신 학부모님께 감사드린다"라며 "본의 아니게 관련 자료가 카페 등을 통해 빠르게 유포되고 있다. 유포를 중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실 수 있는 학부모님께서는 유치원으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했다.

이 사과문을 받은 A 씨는 "사과문 내용이 사과라고 받아들이기가 참 안타까웠다"라며 "유치원에서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과문은 무엇이 잘못된 건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글을 올렸는지를 찾고 싶은 것으로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이후 유치원은 논란이 된 문구를 삭제하고 새 편지지를 다시 아이들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남편을 위한 이벤트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어버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이벤트라면, 엄마(아내)를 위한 이벤트도 있을까? A 씨에 따르면 엄마를 위한 이벤트는 없었다.

현재 해당 유치원 관계자는 가정통신문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아직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 다시 연락드리겠다"라며 말을 아꼈다.

반면 일부 학부모들은 유치원의 대처가 빨랐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 학부모는 "처음에는 편지지를 받고 불쾌했지만, 바로 사과하고 (논란이 된) 편지지도 금방 교체했다. 불찰을 인정하며 담임 선생님과도 직접 학부모에게 전화해 사과했다"라며 "만약 이 유치원이 평소 여성을 대하는 가치관이 저 문구와 같았다면 문제가 됐겠을 거다. 그런데 몇 년 동안 아이를 보내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사과도 받고 해결됐기 때문에 더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논란이 된 문구는 김성묵의 '그 남자가 원하는 여자 그 여자가 원하는 남자'라는 책에 있는 구절이다. 책에는 "미국의 어느 크리스천 가정 사역 기관에서 부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남편이 바라는 아내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라며 "1위는 성적인 만족을 주는 아내, 2위는 여가 상대가 되어주는 아내, 3위는 깨끗하고 매력있는 아내, 4위는 내조와 집안 살림을 잘하는 아내, 5위는 칭찬(인정) 해주는 아내의 순위었다"라고 적혀 있다.

책에는 아내가 바라는 남편의 모습도 있었다. 1위는 애정을 표현하는 남편, 2위는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남편, 3위는 정직하고 투명하게 마음을 나누는 남편, 4위는 경제력이 있는 남편, 5위는 자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남편이다.

김소정 동아닷컴 기자 toy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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