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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광영]그 병원 중환자실은 ‘세월호 조타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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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광영]그 병원 중환자실은 ‘세월호 조타실’ 이었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입력 2018-04-16 03:00수정 2018-04-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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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신생아가 4명이나 숨졌는데 누구 책임입니까?”

3일 판사가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3명에게 똑같이 물었다. 이들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세 사람은 당시 병원 기획조정실장 박모 교수, 신생아중환자실장 조모 교수, 수간호사였다. 박 교수는 조 교수의 전임자로 이 병원 신생아 관리시스템을 만든 인물이다.

이날 세 사람 모두 다른 두 사람에게 책임을 돌렸다. 박 교수는 “현 운영진이 한 일”이라며 발을 뺐다. 조 교수는 “스승인 박 교수가 만든 관행대로 했다. 간호사 관리는 수간호사의 몫”이라고 했다. 수간호사는 “교수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억울해했다. 판사는 세 명 모두 구속했다. 업무상 과실이 소명됐고 서로를 책임자로 지목해 누구 하나 빼놓기 어려웠을 것이다.

4년 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법정에 출석한 선원들도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화물 선적과 고박, 평형수 관리는 항해사가 했다”(이준석 선장), “선장이 과적과 부실고박 관행을 알고도 묵인했다”(항해사), “선장과 항해사의 지시대로 했다”(조타수).

이들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누구라도 그런 처지에 놓이면 “해오던 대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이런 결과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항변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작은 타협을 반복하며 악마의 관행을 쌓아올린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 악습은 누적되면서 환자나 승객이 위태로워져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를 창출해낸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들은 감염된 주사제가 몸에 들어가 사망했다. 한 명에게만 써야 하는 주사제를 여러 환자에게 나눠 쓰는 습관이 주된 요인이었다. 문제가 된 영양주사제는 신생아에게 일종의 식사였다. 몇 년 전까지 1주일에 주사제 2병만 보험이 적용됐다. 이틀분이었다. 나머지 5일도 먹이려다 보니 1병을 처방한 뒤 3, 4명에게 주사했다.

박 교수와 조 교수는 2010년 이 관행을 멈추려 했다. 아기 1명당 매일 1병씩 주사하라고 처방을 바꿨다. 병원이 국제의료기관평가인증을 받으려면 처방과 투약을 일치시켜야 했다. 정부도 처방대로 모두 보험 처리를 해줬다. 하지만 ‘나눠 주사하기’ 관행은 이후 7년간 이어졌다. 간호사들이 실제 어떻게 투약하는지 전혀 살피지 않은 탓이다. 그 사이 주사제를 나누는 번거로운 작업은 경력 1년 미만의 막내 간호사에게 맡겨졌다. 세균이 우글거리는 싱크대 옆이 작업 장소였다. 개봉 즉시 투약해야 하는데 아기마다 투약 시간 맞추는 게 귀찮아 미리 나눠놓았다. 초기에 2, 3시간 전에 나누더니 사건 전에는 7시간 넘게 상온에 방치하다 투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사의 묵인 속에 나쁜 습관은 중환자실 전체로 전염됐다. 간호사들은 인큐베이터 옆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맨손으로 기저귀를 갈고서 분유를 먹였다. 보호자들이 휴대전화를 들여오는 것도 용인됐다. 조 교수는 사건 당일 불안에 떠는 부모들에게 “미숙아들은 원래 놀랄 만한 이벤트가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는 사건 전 병원 감염관리위원회로부터 “주사제 감염에 유의하라”는 경고를 10번 넘게 받고도 의료진을 교육하지 않았다.

의사는 죽음에 익숙한 직업이다. 세월호 선원도 언제든 ‘사지’로 변하는 바다가 일터였다.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업(業)의 본질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생명의 무게가 익숙해질 때 비극은 예고된다. 0.0001%의 가능성을 머리에 이고 사는 직업인의 숙명이다. 비단 그들만의 숙명일까. 모든 직업은 누군가에겐 대체 불가능한 소중한 것을 다룬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이대목동병원#세월호 참사#악습#나눠 주사하기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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