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후진국에 의료한류 전파하는 ‘고관절 수술’ 세계 최고 권위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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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윤택림 빛고을전남대병원 교수

윤택림 교수는 고관절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의료 한류 전도사다. 윤 교수는 “우리의 고관절 수술법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의료 수출 전망이 매우 밝다”고 말했다. 빛고을전남대병원 제공
윤택림 교수는 고관절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의료 한류 전도사다. 윤 교수는 “우리의 고관절 수술법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의료 수출 전망이 매우 밝다”고 말했다. 빛고을전남대병원 제공

윤택림 빛고을전남대병원 교수(60)는 정형외과 의사지만 민간 외교관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지난해 12월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으로부터 우즈베키스탄 보건부 행정고문으로 위촉됐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1월 문재인 대통령과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와 관련해 통화를 하면서 윤 교수의 위촉 사실을 알렸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이런 인적 교류 협력이 양국 관계 발전에 가교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보건부 장관의 자문관 역할을 하는 외국인 행정고문은 윤 교수가 처음이다.

○ ‘의료 한류’ 전도사

우즈베키스탄은 낙후된 의료 환경을 개선하고 의료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 선진의료기관과의 협력을 국가 주요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우즈베키스탄에서 윤 교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서전(surgeon·외과전문의)’으로 통한다.

윤 교수는 우즈베키스탄을 2012년부터 지금까지 7차례 방문해 수술 시연과 강의, 무료 진료를 했다. 우즈베키스탄 의사들이 윤 교수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5년 전이다. 윤 교수가 우즈베키스탄 관절클리닉 개소 등을 논의하기 위해 현지를 찾았을 때다.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사는 소아과 의사가 윤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싶다고 간청했다. 소아과 의사는 화순전남대병원에서 3개월간 연수받은 적이 있는 동료 의사로부터 윤 교수의 명성을 들었다. 인공관절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사흘 만에 걷게 된 그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일반적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고관절 수술을 받으면 2주 정도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하고 2주 후 걷게 되더라도 활동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윤 교수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가 3일 만에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자유롭게 걷는 것을 보고 현지 의사들은 윤 교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2014년 7월에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주치의가 빛고을전남대병원에서 윤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돌아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윤택림 교수가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받은 보건부 행정고문 위촉장.
지난해 12월 윤택림 교수가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받은 보건부 행정고문 위촉장.

이런 인연으로 러시아권의 3대 의과대학으로 꼽히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대와 지자흐주의 대표 병원 등이 전남대병원과 교류 협약을 맺고 의술을 배우기 위해 의료진을 파견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환자들도 ‘고관절 명의’인 윤 교수에게 수술을 받기 위해 매년 찾아오고 있다.

“우즈베크 대통령 주치의 등 정형외과 의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해 행정고문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우즈베크는 고려인 후손들이 많이 사는 데다 (우리와 같이) 우랄알타이어 언어권에 속하고 손재주도 닮아 정이 더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윤 교수는 의료 한류 전도사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 2월에 멕시코에서 미국 특허를 받은 수술법에 대한 시연과 특강으로 주목을 받았다. 멕시코 정형외과 의사 600여 명이 참석한 학회에 세계적 명의 10명을 초청했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윤 교수가 유일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현지 정형외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4건의 수술 시연을 했다.

그는 매년 2, 3차례 ‘라이브 서저리(Live Surgery)’를 통해 전 세계 의료인에게 최고 수준의 수술법을 전수하고 있다. 라이브 서저리는 해당 분야의 전문의가 교육 대상자들에게 직접 수술을 집도하는 모습을 공개하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전남대병원에서 진행한 라이브 서저리에는 몽골과 이란, 시리아, 아르메니아,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8개국서 18명의 의료진이 참관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 그의 수술 시연을 참관한 외국 의료진은 400명이 넘는다.

“수술법을 배우러 온 외국 의사들이 진지하게 물어봐요. ‘혹시 손이 보험에 들었느냐’고. ‘고관절 수술 올림픽이 있다면 골드 메달은 윤 교수가 싹쓸이할 것’이라고 농담을 하는 의사도 있어요. 저를 알아봐주니 고마울 따름이죠.”

○ 세계에서 손꼽히는 고관절 권위자

고관절은 상체와 하체를 이어주고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윤 교수는 고관절 관련 특허를 40여 개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미국 특허를 받은 ‘근육보존 인공고관절 최소 절개 수술법(2개 부위 미니절개에 의한 인공고관절 전치환술)’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관절 기업인 짐머사가 추천하는 인공 고관절 수술법이기도 하다. 기존 인공관절을 끼워 넣는 수술은 15∼20cm 정도 관절 부위를 절개해야 하기 때문에 주변 근육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기존 수술법과는 달리 두 군데에다 5∼7cm 정도 미니 절개하는 수술방법을 사용한다. 주변 중요 부위의 근육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수술 후 회복이 빨라 바로 걸을 수 있다.

지금까지 그는 고관절 수술을 1만 건 넘게 했다. 이는 고관절 수술 분야에서 가장 많은 수술을 하는 일본 의사보다 2∼3배 많은 수치다.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12건 정도 수술을 한다.

윤 교수는 수술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가 40대 초반 때 고관절 수술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토머스제퍼슨대 로스만 교수와 한국에서 수술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젊은 교수와 세계적 권위자가 함께 한 수술이었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조자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로스만 교수가 인공관절을 너무 길게 잘라 미처 다리 안에 끼워 넣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로스만 교수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윤 교수는 침착하게 인공관절을 맞춰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이후 로스만 교수는 윤 교수를 ‘마이 선(내 아들)’으로 부를 정도로 챙겼다.

그는 환자와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인터넷이 낯설던 1997년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었다. 게시판을 통해 환자들이 질문하면 답변하는 식으로 자신의 의료기술을 알렸다. 전남대병원장을 맡은 2014년부터 3년 동안 바쁜 행정 업무에도 1주일에 두 번은 꼭 수술을 했다. 수술 받은 환자가 원할 경우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는 명함을 건네기도 한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 직접 연락을 하라는 뜻이다.

“몸이 허락하는 한 제가 아는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우리의 우수한 의료기술과 시스템을 후진국에 전수하는 일도 계속할 계획입니다.” 그의 다짐에서 진취적인 삶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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